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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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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에세이] 큰 병원에 가보세요?- 서정욱(수필가)

  • 기사입력 : 2024-06-20 1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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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픔의 시작은 지난가을 해외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 날부터였다. 증세는 설사로 ‘여행 간의 음식과 물 때문이겠지’라고 생각하고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병이 식이요법과 약을 먹어도 증상은 계속되었다. 대장암 치료를 받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나의 건강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생각나는 하루였다. 일주일 전에 받은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날이었다. 겁은 조금 났지만 ‘최근 배앓이 외에는 특별나게 아픈 곳이 없었기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라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병원에 갔다.

    진료를 받는 도중 “큰 병은 없는데 작은 우리 병원보다 큰 병원에서 진료를 다시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에 엄청 당황스러웠다. “암이냐?”라는 나의 질문에 “아니다”라는 답변도 신뢰감이 들지 않았다. 단지 환자를 위로하기 위한 상투적인 말로만 들렸다.

    어찌 이런 일이 생기는가. 큰 병이면 어떻게 하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내에게 이런 상황을 알려야 할지, 알린다고 다른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큰 병원에서 재진료를 받아보고 그 결과에 따라 다음 일을 생각하기로 했다. 창원에서 크다는 S병원으로 급하게 달려갔다.

    진료 대기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이미 마음속에는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사고로 가득 찼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외로움, 가장으로서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 치료비 등 각종 불안이 엄습해 왔다. 환자만이 가지는 슬픔이 조금이나마 이해되기 시작했다.

    순서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가 의사를 만나는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의사가 나를 보는 순간 갑자기 “우리 아버지와 너무 닮았다. 직업은 무엇이냐” 등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순간 당황스러웠으나 오히려 친근감이 느껴져 마음만은 편해졌다. 의사는 진료 검사 결과를 보면서 위와 대장 등에 염증이 심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위로했다. 다행스럽게도 이후 치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파 보니 미래에 대한 걱정도 많아졌다. 현 우리 사회에서는 환자가 되면 소외대상이 되고, 가족은 간병으로 고통을 받는다. 보험 광고에서 보듯이 질병보다 경제적인 문제가 더 큰 아픔이 된다. 병 때문에 환자의 인권마저 무시당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의사 증원 문제도 서민들을 슬프게 한다.

    한동안 매일 운동도 하고 소식하면서 건강도 챙겼다. 건강이 좋아지니 망각곡선이 작동, 그동안 멀리했던 술친구가 생각난다. 나이가 들수록 아픔도 소문내어 친구와 가족들과 시름을 공유해야겠다. 개인의 건강이 가족과 사회의 행복을 지키는 첫 번째의 길임을 명심하자.

    서정욱(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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