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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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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술잔이 놋그릇을 만났다- 김나리(작가)

  • 기사입력 : 2024-06-20 19: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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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리(작가)

    내가 보기에 멋지고 대단한 내 친구에게 하루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그릇이 참 넓다.”

    “아니야. 내 그릇 원래 진짜 작아. 간장 종지 같은 놋그릇 두드려서 겨우겨우 넓혀.”

    친구는 자기 그릇이 다소 커진 대신 두드릴 때마다 아프고, 또 갈수록 그릇이 얇아져서 과연 어디까지 넓힐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웃음이 났다. 친구는 이미 큰 그릇이다. 더 넓혔다간 대지가 될 것 같다. 그러나 간장 종지를 두드려 그 크기가 되려면, 처음부터 예사로운 간장 종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두드리며 사느라 몹시 아프기도 했겠다. 나는 친구가 걸어온 길에서 겪었을 아픔을 보듬고도 싶었지만,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말장난이었다.

    “와, 처음부터 완전 두꺼운 간장 종지로 태어났구나. 얼마나 두꺼운 거야.”

    나는 아주 두꺼운 간장 종지였을 한 아이를 상상했다. 간장이 조금만 담기어도 넘쳐 쏟아지고, 중심이 잡히지 않아 넘어져 뒹굴고, 그러다 여기저기 부딪히기 일쑤였을 것이다. 때로는 고통을 무던히도 견디고, 또 때로는 부조리를 참아내지 못하여 큰소리를 냈을 아이다. 그 아이는 살아가고 싶은 세상을 스스로 만들고자 했기에 큰 그릇이 필요했다. 아이는 자기 자신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친구의 시선은 세상을 향해 있다.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다, 그 속에서 더 소외된 사람을 찾아내서 그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결코 말로만 그치지 않고, 돕기 위하여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다.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던져진 돌을 자기 몸으로 막아낸다. 그 등에 돌이 낸 상처는, 늘 친구의 앞모습만 보고 떠나는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때로는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는 친구에게 사람들은 더 큰 것을 내놓으라 요구하기도 하였다. 아마 더러는 그런 작은 돌에 맞아 그릇이 넓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친구는 놋그릇이기 때문이다.

    친구를 곁에서 보며 나는 가끔 내 그릇은 그렇게 두드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놋으로 만든 간장 종지가 아니라 유리 술잔인지도 모른다. 나도 두드려 보았는데, 소리만 요란하지 크게 넓어지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놋으로 만든 그릇은 아닌 모양이다. 술잔을 크게 키우겠다고 마구 두드렸다간 산산조각이 날지도 모를 일이다. 술잔은 다만 외쳤다.

    “부어라!”

    내 잔이 넘친다. 나는 넘쳐흐르는 술을 보며, 내가 그렇게 작은 술잔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술을 담을 수 있지 않았겠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작은 잔에 담긴 술을 누가 얼른 마신다면, 그러면 또 새 술이 채워지기도 할 것이다. 나는 나를 두드리는 대신 자주 기울여 내가 타고난 그릇의 몫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커다란 놋그릇을 바라보았다.

    놋그릇은 두드리기를 멈추었다. 요즘은 그릇에 광을 내고 있다. 다른 경험을 해보고, 좋아하던 일에 관심을 갖고, 예전보다 많이 웃는다. 그 놋그릇 참 넓고 깊다는 생각만 하였는데, 이제는 빛나고 고운 그릇이 되었다.

    생각하면 나는 두드려서 넓어진 놋그릇들을 참 좋아한다. 그 삶이 쉽지만은 않을 것인데도, 어떤 사람들은 기어코 세상을 품고자 애를 쓴다. 나도 그런 사람을 닮고자, 오늘도 내 잔을 비워 나누고 깨끗이 닦아 둔다. 놋그릇의 삶을 향한 작은 잔의 존경이다.

    김나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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