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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 25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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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근본이 바로 서야 - 박태일(시인·경남대 교수)

본질 모르고 넘어가는 잘못은 두고두고 큰 문제

  • 기사입력 : 2011-08-0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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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을 읽다 보니 낯익은 작가 모씨에 대한 기사가 눈에 뜨였다. 정년퇴임을 맞아 냈다는 책 소개였다. 그런데 책 제목에 “나의 손은”이라 쓰고 있지 않은가.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몇십 년째 글밥을 먹고 살면서 이름을 적지 않게 얻은 분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내 손”으로 쓸 생각에 이르지 못했다니. 그것도 작품 가운데 예사롭게 쓸 수 있을 여느 자리가 아니다. 오랜 문학살이 한 시기를 매듭짓고 새로 시작하겠다는 뜻을 다지기 위해 낸 기념문집 앞머리, 책이름이라는 무거운 자리가 아닌가. 그런 곳에 “나의 손”이라 썼다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침소봉대라 여길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사람들은 너나없이 토씨 ‘의’를 쓸 곳 쓰지 않을 곳 가리지 않고 붙여댄다. 그렇지만 이것이야말로 왜풍에 찌든 대표 말버릇 가운데 하나다. 우리말과 일본말 사이에 눈에 뜨이는 차이 가운데 하나는 이름씨와 이름씨를 하나로 묶을 때, ‘의’를 삼가는 쪽과 그것을 꼬박꼬박 가져다 붙이는 쪽에 있다. 일본어 の가 그것이다. 보기를 들어 ‘합천 가야산’, ‘선풍기 바람’은 우리 말법이고 ‘합천의 가야산’, ‘선풍기의 바람’은 왜풍이다. 거기다 영어 학습에서 온 ‘of’ 용법이 덧씌워져 나쁜 버릇을 더 굳혔다. 잘못 붙이는 토씨 ‘의’야말로 우리 말글을 어름어름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경남도에서 거북선을 한 척 만들었다. 그런데 미국산 소나무를 감으로 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뒤처리를 어떻게 했는지는 모른다. 우리 소나무를 쓰기로 해 놓고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세상과 역사를 속이려 든 셈이다. 거북선 복원이 어떠한 뜻을 지니는가에 대한 마음자리부터 틀렸다. 충무공 현양 사업의 근본을 잊은 죄악을 저질렀으니 그렇게 만들어 내놓은 거북선이 무슨 뜻이 있을까. 경남 도민이 지닌 충무공에 대한 관심이나 거북선에 대한 자부심이 행정 관료의 업적주의에 제물로 내던져질 만큼 천박하지 않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참고로 시인 황동규는 자신의 아들 이름을 ‘충무’라 지었다. 물론 <난중일기>를 읽고 난 뒤였다. 드문 경우지만 제대로 된 존경이 어떤 것인가를 깨닫게 하는 한 본보기는 되리라.

    세상살이에 근본이 바로 서지 않으면 헛될 일이 태반이다. 근본을 잃으면 마침내 다 잃는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와 안전도 근본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사상누각이다. 요즘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신종 왜로의 독도 침탈 야욕만 해도 그렇다. 하나같이 ‘현해탄’의 긴장이니 뭐니라며 써댄다. ‘대한해협’이라는 버젓한 이름을 두고 우리가 앞장서 일본 이름인 현해탄을 굳혀 주고 있다. 무지만을 탓할 수 없는 어리석음이다. 그러고도 부산에서 제주도 너머 멀리 걸친 자랑스러운 바다를 우리 영해라 할 수 있겠는가. 이미 1999년 이른바 신한일어업협정을 마련하면서 독도 앞바다를 중간수역에다 넣는 얼빠진 정신머린데 ‘현해탄’ 정도에 무슨 호들갑이냐 한다면 더 붙일 말은 없지만.

    헛된 명분이나 입에 올리는 완고함도 문제지만, 근본 모르고 넘어가는 잘못은 두고두고 큰 문제다. 근본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나머지는 더 바라볼 게 없다. 작가 모씨는 정년 뒤부터 “강력한 표창을 든 청년 작가로 소설에 미쳐볼 생각”이라 기사는 적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뜻대로 되기 어려울 것을 안다.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곳에서 ‘나’를 앞세운 말을 썼을 것인가. 그럼에도 아직까지 ‘나의’와 ‘내’를 나누어 쓸 헤아림이 없었다. 오늘날 그가 어떤 이름을 누리고 있는가는 관계없는 일이다. 애초부터 먼 자리를 내다볼 재목이 아니었던 것일까. 어쨌든 정년은 축하할 일이다. 건강하고 다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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