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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문화기획] 우리 춤- 춤사위에 담은 恨과 멋

  • 기사입력 : 2011-07-1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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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량무
     
     
    민주화의 바람이 거세던 1987년 7월 9일. 경찰이 쏜 최루탄에 목숨을 잃은 이한열의 장례가 치러졌다.

    운구행렬은 이한열의 모교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멈췄고 순간 수천 개의 시선은 소복 차림의 한 여인에게 집중됐다.

    바로 이한열의 넋을 위해 살풀이를 출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이애주 서울대 교수였다.

    그녀는 춤만으로, 큰 슬픔을 말했다. 이렇듯 희노애락애오욕을 다양한 몸짓으로 풀어낸 우리춤에 대해 알아보자.



    살풀이춤.


    ◆살풀이춤= 살풀이는 말 그대로 살을 풀어 없앤다는 뜻의 합성어다. 흉살을 예방하는 장단과 춤사위를 뜻한다. 본래 주술적인 굿판에서 비롯됐지만 기생들에 의해 추어지면서 점차 세련미를 갖춘 예술적인 춤으로 변모해갔다. 흰 수건을 들고 공중으로 흩뿌리며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본래의 제의적인 면을 계속 지니고 있어 그렇다는 견해가 많다. 망자의 넋을 달래 보내는 씻김굿을 살펴보면, 창호지를 갈래갈래 찢어 만든 지전(紙錢)이라는 종이 돈을 만들어 소품으로 사용하는데, 이것이 수건으로 대체됐다는 견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돼 있으며 호남 기방 계열의 이매방류(流), 경기지방 무속에 기원을 둔 김숙자류, 무용의 현대화를 개척한 한성준의 맥을 이은 한영숙류로 그 계파가 나뉘어 있다. 계파에 따라 사용하는 수건의 폭과 길이가 다르다. 이한열의 넋을 위로했던 이애주 교수의 살풀이는 한영숙류로 팔을 길게 뻗었다가 가져오는 동작이 많다.


    진주검무.


    ◆검무=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와 제21호 통영검무가 대표적이다. 7세기 신라에서 유래돼 조선시대 궁중무용으로 채택됐다. 신라 때는 가면을 쓰고 민간에서 민속행사로 추던 것이 조선시대에 와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한 상징적 의식무로서의 역할이 강조됐다. 무관 복장을 한 기녀들이 주로 춤을 추었다. 진주검무와 통영검무에 쓰이는 칼은 대부분 작고 단아하며 날이 흔들릴 때마다 소리가 나게 만들어져 있다. 진주검무의 칼은 칼의 목이 고정돼 있어 손목을 많이 돌려야 하고, 통영검무의 칼은 360도 회전이 가능하다. 지방에 따라 큰 칼, 작은 칼, 쌍검, 장검 등 다양한 칼이 쓰이고 창작 무용에는 활과 창도 쓰인다. 진주검무의 경우 8명이 무리지어 추어서 팔검무라고도 불리며, 한삼을 끼고 시작해 칼을 쥐고 추는 칼사위로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통영검무는 통영에서 전승되어 내려온 북춤과 칼춤으로 기생들이 추던 민속춤인 승전무의 일부이다. 1968년 북춤이 승전무라는 이름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된 후 1987년에 검무가 추가됐다. 진주검무는 고(故) 성계옥에 의해, 통영검무는 엄옥자에 의해 전승되어 오고 있다.


    ◆한량무= 한량이란 벼슬을 하지 못한 선비를 가리킨다. 한량무는 말 그대로 한량이 추는 춤으로, 남사당패가 남녀 간의 삼각관계를 그린 연극요소가 많은 춤에서 비롯됐다. 현재 두 가지 형태가 전해져 오는데, 춤과 연기가 혼합된 무용극 형식과 혼자서 추는 독무 형식이다.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진주한량무가 무용극 형식의 대표적인 춤으로 한량과 승려, 각시 사이의 애정관계를 그렸다.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한량무가 대표적인 독무 형식으로 동래야유 예능보유자 문장원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주로 남자 무용수에게 주어지는 춤이지만 꼭 성별이 정해진 것은 아니어서, 여자 무용수도 많이 추는 춤이다.


    ◆학춤= 학춤은 예부터 도교적, 유교적으로 고고한 인격과 품성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던 학의 형상을 본뜬 춤이다. 학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활개치기’ 동작, 도도하게 서 있는 모습인 ‘학사위’, 날개를 퍼득이는 모습인 ‘꼬리치기’ 등 학의 행동을 자세히 묘사한 춤사위들이 주를 이룬다. 선비의 꼿꼿한 이미지를 강조함과 동시에 왕의 무병장수를 바라며 췄던 궁중학춤과, 서민들이 각자의 복을 바라며 추었던 민속학춤으로 나뉜다. 민속학춤인 부산동래학춤과 양산 통도사 학춤, 울산학춤 등이 유명하다.



    소고춤.


    ◆소고춤= 빨강, 파랑, 노랑의 삼색띠를 두르고 소고를 들고 추는 춤이다. 기녀들이 추었던 춤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춤사위가 경쾌하고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기교적인 면이 발달돼 있다.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도 여성성을 강조한 소고춤으로 1930년대의 한성준에게 승무를, 40년대의 최순이에게 굿거리춤을, 김옥민, 김녹주에게 소고무를 사사받은 김수악이 소고춤의 맥을 잇고 있다. 김수악은 권번(일제강점기에 있었던 기생조합) 출신의 마지막 생존자로 교방굿거리춤과 진주검무의 보유자이기도 하다.


    부채춤.


    ◆부채춤= 우리에게 익숙한 부채춤은 사실 전통무가 아닌 한국 신무용 계열의 창작춤이다. 무당이 부채를 들고 춤을 추던 모습에 소재를 얻어 창작된 춤으로 부채를 펴고 접는 동작이 많고 꽃이나 파도 모양을 표현하는 등 곡선의 미를 한껏 드러낸 동작들이 특징이다. 세계적 무용가 최승희의 제자이자 동서인 김백봉에 의해 만들어져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발표되면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이전의 부채춤은 혼자 추는 독무였으나 김백봉의 부채춤은 무리 지어 추는 군무로, 2개의 원형을 안팎으로 만들어 높낮이를 달리했다. 또 일렬로 늘어선 무용수들이 부채를 위아래로 넘실거리게 하면서 원 가운데 들어간 주인공이 부채를 쫙 펴 얼굴을 가리는 동작이 백미이다.

    힙합춤과 전통춤이 비슷한 면이 많다는 것을 아는지. 힙합춤에서 팔다리, 몸통을 따로따로 움직이는 테크닉처럼 한국춤도 허리를 중심으로 어깨, 무릎, 발사위가 따로 논다. 대한민국 비보이의 대명사 팝핀현준은 국악인 아내를 맞이한 후 전통가락과 힙합을 조화시키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가락과 춤사위를 먼저 짚어 보고 재조명하는 작업이 문화강국을 만들어 가는 데 꼭 필요한 일임을, 힙합의 선두주자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김유경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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