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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

“성공하려면, 지금 당장 실행하면 참 좋은데…”

  • 기사입력 : 2011-06-1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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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이 지난 1일 양산공장 자신의 집무실에서 삶의 철학과 인생역정을 얘기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성민건기자/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할까?" 누구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화두다.

    하지만 삶의 방식은 인구수만큼이나 다양해 '정답 인생'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다만 딱히 두 부류로 나눈다면 능동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사람과 그저 주어지는 대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주체는 사람이다. 따라서 한 개인의 삶의 방식이 인류사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이 중요하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기어코 성공을 일궈냄으로써 요즘 젊은이들에게 전범(典範)이 될만한 인물이 우리 지역에 있다.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그는 다소 촌스럽지만, 그러나 기존 광고와는 확연히 차별화된 CF를 통해 자신을 세상 속에 알렸다. 세련되지 않은 CF는 처음엔 별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반복될수록 묘한 흡인력이 발동됐다. 급기야 패러디의 소재로 광범위하게 활용되는가 싶더니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정체가 무엇일까” 하는 관심을 촉발시켰다.

    그는 무리한 사업 확장이 실패하면서 무일푼 부도 기업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련도 수차례 겪었다. 하지만 치열하게 오뚝이처럼 일어나 한 해에 10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번듯한 건강식품 업체를 일궈냈다.

    고성 출신 천호식품 김영식(61·경영학 명예박사) 회장.

    최근 김 회장은 “나 혼자 잘살아서는 큰 의미가 없다”며 ‘대한민국 부자 만들기 프로젝트’ 인터넷 뚝심 카페를 열고 회원들에게 “지금보다 10m만 더 뛰자”고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외친다. “부자가 되려면, 뜻을 세운 지금 당장, 실행하라”고.

    지난 1일 낮 천호식품 양산공장을 방문, 김 회장을 만나 그의 인생역정을 들었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한 딸아이의 푸념

    김 회장을 성공한 기업인으로 만들어 준 것은 물려받은 금전적 밑천도, 그렇다고 행운도 아니었다. 오로지 ‘지금, 당장!’ 정신이었다. 옳다고 판단되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결행했다. 그렇다면 그를 성공으로 인도해 준 이른바, ‘즉결즉행(卽決卽行)’의 철학은 언제 형성됐을까.

    1982년 32세 되던 그는 부산 남구 대연동 허름한 주택 전세방에서 힘든 생활을 꾸려 가고 있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4만원 짜리 단칸방에서다. 겨울나기가 무섭던 그 시절, 부인과 자녀 2명을 건사하기 위해 하루 연명할 쌀과 연탄을 장만하는 것이 급선무일 정도로 궁핍했다. 하루는 초등 2학년 딸아이가 친구들을 초청해 생일파티를 했다. 거기서 딸아이 친구들이 “너희 집은 왜 방이 하나밖에 없어?” 하며 놀린 모양이다. 친구들이 돌아간 후 딸이 울면서 푸념을 쏟아냈다. “아빠, 우리는 왜 이렇게 가난해?”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회상했다. 식구들이 잠든 한밤에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왜 이것밖에 안되는가!’ 그리고 다짐했다. ‘내 생각과 행동이 너무 느렸다. 이제부터 지금보다 10m만 더 뛰어보자.’ 그의 삶은 180도로 바뀌었다.



    군 제대 후 고향서 학습지 대리점

    김 회장은 전역 후 24살 때 고향 고성에서 초등 ‘일일공부’ 학습지 지국을 인수, 영업에 뛰어들었다. 난생 첫 사업임에도 90명에 불과하던 기존 회원을 두 달 만에 550명으로 늘리는 놀라운 경영능력을 보여줬다. 사실 그의 ‘성공집념’은 이때부터 이미 입증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낡은 자전거로 군내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하루 100㎞를 오가는 영업을 했고, 개인지도 서비스로 성적을 올려주면서 신뢰를 구축했다.

    김 회장은 아무리 머리 좋은 사람도 부지런히 뛰는 사람은 못 당한다며 당시 터득한 ‘성공 비법’을 귀띔했다.

    “자기 분야에서 기필코 성공을 거두겠다면 다른 방법이 없어요. 우선 부지런히 달려야 하는데, 이런 사람을 당해 낼 장사는 아무도 없습디다.”




    무리한 사업 확장 실패 쓴맛

    크게 키운 학습지 지국을 지인에게 넘기고 다른 길을 모색하던 김 회장은 30살에 접어든 1980년 변신을 시도한다.

    때마침 ‘세계 금연의 해’로 금연파이프를 만들어 팔면 큰돈이 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결행했다. 대학등록금이 50만원이 안되던 시절에 6개월 동안 무려 6000만원을 넘게 벌었으니 자신감도 붙을 만했다. 그래서 장난감·주방용품 등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이 화근이었다. 부도가 났고 무일푼이 됐다. 전국을 떠돌며 갖은 고생을 했다. 그렇지만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다. 1984년 34살에 천호물산(천호식품의 전신)을 설립하고 저주파치료기를 생산하면서 재기를 도모했다.

    1986년에는 식용달팽이사업에 뛰어들었다. 레스토랑, 식당 등과 거래를 트면서 매출이 쏠쏠했다. 하지만 돈이 된다는 소문에 경쟁상품이 쏟아지면서 가격이 폭락했다. 또 한 번의 좌절이었다. 달팽이엑기스를 만들어 팔아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문득 떠올랐다. 3개월간 방송국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노력으로 1992년 공중파에 소개됐고, 대박이 터졌다. 그리하여 1994년 전후 부산에서 현금 부자 100위 안에 들 만큼 유명해졌다.



    IMF 시련이 덮치고

    그러나 1997년 IMF구제금융사태는 그를 비켜가지 않았다. 건강식품 외에 서바이벌 게임, 찜질방 체인, 황토방 체인 등으로 확장한 것이 사단이었다. 그가 이룬 성공은 물거품처럼 꺼져 버렸고, 또다시 빈털터리가 됐다. 한 끼 밥값이 없어 소주 한 병에 소시지 하나로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하지만 물러설 그가 아니었다. 공장에 잔뜩 남은 쑥진액 용기들을 보고 또다시 승부를 걸었다. 돈은 없었지만 강화도산 최고급 쑥을 후불로 대량도입 계약하고 소비자 직거래 등으로 18만원 하던 쑥진액을 5만원에 내놓고 소비자를 공략했다. 나중에 돈 벌면 지불하겠다며 탤런트 이순재를 모델로 섭외, 전단지를 만들어 직접 돌리며 거리영업을 했다. 부산-서울 간 비행기 안에서 전단지를 돌린 적도 있다. 2년 만에 빚 20억원을 다 갚았다. 수차례 모진 수업료를 지불한 탓인지 그는 이제 건강식품 한 우물만 판다.



    예술가처럼 벌어서 천사처럼 쓴다

    김 회장에게는 각 기관이나 기업체로부터 연일 강연 요청이 쇄도한다. 시간당 강연료는 200만원. 한 번에 2~3시간을 하니 400~600만원이 들어온다. 그러나 그 돈은 한 푼도 개인 용도로 쓰지 않는다. 모 금융기관에 기부 전담계좌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집필해 30만부 이상이 팔린 ‘10미터만 더 뛰어봐!’ 자서전 책자 인세 수입도 모두 같은 통장으로 들어간다.

    “아이를 많이 낳아야 국가경제가 지탱된다”며 뚝심카페 회원 중 세 자녀를 출산한 가정에 200만원을 주고, 두 번째 아이를 낳은 가정에는 기저귀 10개월분을 지원한다. 김 회장은 ‘예술가처럼 벌어서 천사처럼 쓴다’는 기부 철학을 갖고 있다.

    “돈은 왜 법니까? 잘 쓰기 위해서입니다. 언제 써야 하느냐. 살아서 써야 합니다. 죽고 나서 자식에게 물려줘 본들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지난 1992년 장애인들의 백두산 등정을 단독 후원했고, 부산·서울 사회복지단체에 꾸준히 기부를 해오고 있다. 지난 1997년에는 사회복지부문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뚝심카페서 ‘선플달기’ 사회계몽 운동도

    김 회장은 익명성의 천막 뒤에 숨어서 쏟아내는 인터넷 ‘악플’(근거없는 비방·욕설 등)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암적 요인이 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래서 뚝심카페 회원들을 대상으로 상금 3150만원을 내걸고 이달부터 ‘선플달기 캠페인’에 나섰다. 내년 3월 말까지 ‘선플’을 가장 많이 다는 회원의 순위를 매겨 1등 1000만원, 2등 500만원, 3등 5명 각 100만원, 나머지 998명에게 1만원권 상품권 등 1005명에게 시상할 계획이다.

    그는 “최근 자살한 연예인과 아나운서 등은 모두 근거없는 인터넷 악플이 원인이었다”며 “선한 댓글 달기 운동을 통해 인터넷 문화를 건전하게 정착시켜 사회의 희망온도를 1도 정도 높여 보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훈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서두르면 안 된다.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마음에 욕망이 생기거든 곤궁할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장구(無事長久)의 근본이다.’

    ☞김영식 회장은= 1951년 고성에서 태어나 군 제대 후 영업에 뛰어들었다. 1984년 자신의 사주(四柱)에 물이 부족하다는 유명 철학가의 말을 듣고 회사 이름을 ‘천호(泉湖)식품’으로 했다. 부산본사와 서울지사, 양산공장이 있으며, 달팽이엑기스와 강화사자발쑥진액, 산수유환, 통마늘진액 등 170여 종의 건강식품을 생산하고 있다. 올해 연 매출은 10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산된다. 임직원 수는 350여 명이다.


    글= 이상목기자 smlee@knnews.co.kr

    사진= 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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