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 23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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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26) 통영 사량도 ② 하도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 따라 길게 드리운 산자락
산그늘 내려앉은 여섯 마을엔 여유로운 시골 풍경이…

  • 기사입력 : 2010-07-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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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량도 하도 칠현봉에서 바라본 대포마을(왼쪽)과 상도./이준희기자/

    뭍으로 나갔던 섬사람들이 마지막 배를 이용해 아랫섬으로 돌아오고 있다.

    3개의 유인도(상도·하도·수우도)와 6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통영시 사량면(蛇梁面), 그중에서도 상도(윗섬)와 하도(아랫섬)로 이뤄진 사량도(蛇梁島)는 쪽빛 바다와 어우러진 산세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암봉으로 이루어진 윗섬의 지리산과 불모산, 옥녀봉, 가마봉과 아랫섬의 일곱 봉우리의 멋스러움을 자랑하는 칠현산이 서로 자웅을 겨루며 자태를 뽐내고 있다.

    윗섬과 아랫섬을 가르는 물길이 가늘고 긴 뱀처럼 구불구불해 이름 붙여진 것으로 전해지는 사량도. 세상사에 찌든 우리를 언제나 반가운 손짓으로 맞이하는 포근한 섬, 사량도를 향해 길을 떠난다.

    이른 아침 해무(海霧) 사이로 비친 희미한 햇살은 섬으로 향하는 우리들의 발길을 몽환적 분위기로 빠져들게 한다. 멀어지는 가오치 선착장을 뒤로 하고 작은 섬들을 지나 사량도를 향하는 뱃머리에는 갈매기들이 앞장서 길을 안내한다.

    사량도는 역사와 전설을 간직한 유서 깊은 섬이다. 이미 고려시대 때부터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비는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전해올 정도다. 조선시대 들어 섬은 이웃한 구랑량만호진(仇浪梁萬戶鎭)의 수군과 병선의 초계정박지로 이용됐다. 그러다 진영을 아예 사량도로 옮겨 사량만호진(蛇梁萬戶鎭)을 설치하고, 성종 21년(1490)에 사량진성(蛇梁鎭城)을 축성해 진영의 위용을 갖췄다. 이처럼 사량도는 임진왜란 당시 호남과 영남을 잇는 수군의 주요 거점으로 이용되던 중요한 섬이었다.

    40여 분 만에 여객선 사량호는 사량도 윗섬에 손님을 내려 주고 이내 맞은편 하도로 향한다. 섬과 섬 사이의 거리가 좁아 금세 하도에 닿은 배는 아랫섬 덕동여객선터미널에서 뭍으로 향하는 섬사람들을 태운 후 상도를 거쳐 다시 가오치로 향한다.

    아랫섬은 읍덕리와 양지리 2개의 이(里)와 덕동, 읍포, 외지, 능양, 백학, 먹방 등 6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멀어지는 사량호를 뒤로한 채 아랫섬 덕동여객선터미널 선착장에 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칠현보 횟집이다.

    바다에서 갓 잡은 신선한 횟감으로 우리의 입맛을 유혹하는 칠현보 횟집은 등산객들은 물론 아랫섬을 찾은 관광객들이 들르는 필수 코스다. 이곳에서 소주 한 잔에 얼큰한 매운탕과 회로 든든히 배를 채우면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잊는다. 등산객들이 섬을 찾는 이유는 산행도 좋지만 바로 이 맛 때문이 아닐까!’

    칠현보 횟집 천원생(42) 대표는 “사량도 윗섬의 산세를 제대로 느끼려면 아랫섬 칠현봉에 올라 굽이치는 바다와 함께 어우러진 윗섬의 산세를 보는 것이 제일이다”며 “아랫섬의 칠현봉도 윗섬 못지않은 산세로 등산객들이 찾을 만하다”고 추천한다.

    사량도 윗섬의 지리산이 전국적인 유명세로 명성을 떨칠 때 그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아랫섬의 칠현산은 묵묵히 지리산을 부러워해야만 했다.

    하지만 칠현산도 산세로 따지자면 지리산 못지않다. 옥녀봉의 현란한 자태에 비해 한결 순수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남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따라 7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는 칠현봉(七鉉峰)은 일곱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능선이 산행의 묘미를 더할 뿐 아니라 산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탁 트인 전망이 끝내준다. 그래서인지 7개 봉우리 가운데 망산(공수산·해발 310m)에는 옛 사량진의 봉수지가 있다.

    산 정상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면 섬 전체는 물론 멀리 한산도와 고성까지 눈에 들어온다.

    읍포마을 노인들이 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있다.

    덕동에서 아랫섬(하도) 일주도로를 따라 3km가량을 달리면 읍포마을이다.

    읍포마을은 사량도에서 가장 많은 농사를 짓는 마을이다. 섬마을 어민들 중 70% 이상이 농사를 짓는다고 하니 놀랄 만한 일이다. 마을은 골짜기가 깊어 이곳이 섬이 아닌 산골마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농사에 가장 필요한 물은 마을 위의 저수지로 해결하고 있다.

    읍포와 덕동마을의 앞 글자를 딴 언덕 위의 사량초등학교 읍덕분교는 3명의 초등학생들이 모여 공부를 하고 있다.

    읍포선착장에서는 한 어민이 바닷속에서 건져올린 통발을 씻는 작업이 한창이다.

    마을 어민 심인용(40)씨는 “여름철이면 고기들이 수심이 깊은 바다 쪽으로 나가기 때문에 통발은 건져내고 대신 여름부터 겨울철까지 문어단지를 바다에 투입한다”고 말한다. 철마다 잡히는 고기가 달라 시기에 맞게 어구를 바다에 투입하거나 장비를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특히 여름철이면 주낙(긴 낚싯줄에 여러 개의 낚시를 달아 물 속에 늘어뜨려 고기를 잡는 어구)으로 하모와 장어를 잡아야 하기에 요즘 마을마다 주낙 채비로 어민들의 손길이 바쁘다고 한다.

    내만 깊숙이 자리 잡은 읍포마을 앞 바다는 돌로 담을 쌓아 바다를 메운 흔적이 남아 있다. 바로 ‘개막죽’이다.

    땅이 부족한 섬사람들이 바다를 메워 땅을 넓히려 한 것이다. 마을 주민 강찬영(83)씨는 “박 대통령 시절이던 1960~70년대, 농토가 부족한 섬을 조금이라도 넓히기 위한 간척사업이 주민들에 의해 3년여에 걸쳐 진행됐다”며 “당시 주민들은 장비가 없어 직접 지게에 져서 날랐지만 한계에 부딪혀 결국 공사를 중단하고 말았다”고 회상한다. 그는 이어 “당시 헐벗고 못살아 먹을 것이 없는 섬사람들에게 부역(賦役)을 하면 밀가루를 나눠준다고 해 마을 주민 모두가 이 일에 동참했다”며 당시의 기억을 더듬는다. 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식히는 노인들의 모습이 참 여유롭다.

    외지마을 할머니가 물 빠진 바닷가에서 해산물을 캔 후 돌아가고 있다.

    읍포마을을 지나 꼬불꼬불 이어진 해안로를 따라 가다 보면 외지마을이다. 물 빠진 바닷가에서 두 손 가득 해산물을 든 한 아주머니는 외지인의 방문이 낯선지 ‘어디서 왔느냐?’고 먼저 묻는다. 아주머니는 잡은 고둥과 바지락으로 반찬도 사고, 용돈도 하고 이래저래 쓸 일이 많단다.

    고개 넘어 능양마을은 어촌 시인 마을로 유명하다. 지난해 7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생활문화공동체 사업에 선정된 통영 극단 벅수골(대표 장창석)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시극, 시낭송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하면서 이뤄졌다. 마을 앞 냉동창고에는 주민 23명의 인생사가 빼곡히 적혀 있다.

    어촌 시인마을로 유명한 능양마을, 마을 앞 냉동창고에 주민 23명의 인생사가 빼곡히 적혀 있다.

    능양마을 주민들의 시와 노래.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섬마을로 시집온 장순석(81) 할머니의 삶과 수차례 딴살림을 차린 시아버지와 남편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지만 이제는 하늘로 떠난 그들이 그립다는 송영자(81)할머니의 이야기에는 삶의 애환이 녹아 있다.

    능양마을은 1980년대만 하더라도 어린 초등학생들이 500여 명에 이를 만큼 북적이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떠나고 사량초등학교 양지분교에는 분교장 김종렬 선생님과 정은혜(1년)양 만이 남아 학교를 지키고 있다.

    하루종일 선생님과 함께 생활하는 은혜는 이 세상에서 부모님 다음으로 선생님이 가장 좋단다.

    은혜는 친구가 없다. 그래서 학교를 찾은 날에도 은혜는 학교에서 혼자 컴퓨터를 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살며시 다가서서 ‘무얼 하고 있었니?’라고 묻자 은혜는 쑥스러운 듯 귀엣말로 “그림 그리고 있어요. 선생님 너무 좋죠”라고 답하며 살며시 웃음짓는다. 교문을 나서는 외지인에게 은혜는 아쉬운 듯 고개 숙이며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한다.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서는 외지인은 다음을 기약하며 손을 들어 답한다.

    뱃시간에 쫓겨 길을 재촉한다. 칠현산 정상에도 올라야 하는데 시간은 벌써 오후 3시를 가리킨다. 백학마을과 큰·작은 먹방마을을 지나 처음 출발했던 덕동마을로 향하니 고갯마루에는 아랫섬 일주도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경사진 암벽에는 포클레인을 이용해 바위를 깨고, 다듬어 관광객들이 일주도로를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덕동마을과 작은 먹방 사이의 등산로를 따라 마지막 코스인 칠현산에 오른다. 산은 숲이 우거져 그늘 사이를 걷는 길이 그나마 힘겹지 않다.

    경사진 산길을 오르기를 30여 분, 칠현봉에 서니 가슴이 뻥 뚫린 듯 후련함을 느낀다. 시원한 바닷바람은 콧등을 간지럽히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준다.

    산 위에서 내려다본 남쪽의 읍포는 산으로 둘러싸여 섬이라기보다 차라리 산골마을 분위기다. 내만 깊숙이 들어앉은 읍포는 강한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데다 물도 풍족해 사람이 살기 좋은 여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 윗섬이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로 붐비는 반면 아랫섬은 조용한 시골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친근감이 묻어난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서둘러 하산길에 나선다. 20여 분간 길을 내려가면 아랫섬 일주도로가 시작되는 덕동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잠시 후 배는 다시 섬을 나온다. 한나절 우리를 받아들였던 섬은 말없이 우리를 배웅한다.

    ☞가는 길= 사량도에 가려면 통영 항남동의 여객선터미널에서 1일 2회 운항하는 정기여객선 2000사량호(소요시간 1시간30분)를 이용하거나 도산면 가오치에서 차량운송선 사량호(소요시간 40분)를 이용하면 된다. 사량호는 오전 7시부터 두 시간 간격으로 운항한다.

    ☞잠잘 곳= 하도에는 사철나무펜션(010-4039-7089), 신석만민박(☏649-8085), 허기옥민박(☏649-9834), 강정한민박(☏649-6266), 강정호민박(☏649-7057), 주오민박(☏649-7578) 등 많은 민박집과 펜션이 있어 잠을 자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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