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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무심코 남긴 음식물이…- 정한진(창원전문대 식품조리과 교수)

  • 기사입력 : 2009-11-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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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릴 때 배가 고파 밥그릇을 싹싹 긁어 먹으면 어머니께서 핀잔을 주셨다. “얘야, 숟가락으로 밥그릇 긁는 소리를 내선 안 된다.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밥 몇 톨은 남겨야 하는 법이다.” 식탁예절에 대한 말씀이자 체면에 관한 말씀이었다. 시골 할아버지 댁을 방문했을 때 할머니께서는 마당에 돌아다니는 닭을 잡아 푹 삶아 주시곤 했다. 손자들이 맛있는 닭고기를 발라 먹고 버린 뼈는 할머니 차지였다. 물렁뼈는 물론 뼈를 깨물어 그 속을 쪽쪽 빨아 드셨다. 요즘도 그때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닭 뼈를 입에 물곤 한다.

    따뜻한 밥 한 그릇만 있어도 행복했고 밥 한 톨 남기기에도 아쉬웠던 어려운 시절에는 남아 버리는 음식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골칫거리다. 2007년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먹지 않고 버린 음식물이 무려 530만t에 이른다고 한다. 이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만 6330억원이라고 하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비와 인건비까지 합치면 경제적 손실이 15조원을 넘는다.

    음식물 쓰레기는 경제적 손실만 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음식물 쓰레기 1t을 처리하는데 이산화탄소가 338kg이 발생한다. 530만t의 음식물 쓰레기는 179만t의 이산화탄소를 발생한다. 이는 승용차 60여만 대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맞먹는 분량이다.

    이산화탄소는 음식 재료의 생산에서부터 발생한다. 특히 육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축의 먹이인 곡물 생산에서부터 가축의 호흡과 분뇨처리에 이르는 과정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만 하더라도 엄청난 양에 놀랄 것이다. 게다가 음식 재료의 이동 과정에서 운송수단도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결국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에 음식물 생산에서 발생하는 그것까지를 고려해야 한다.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난화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와 자연 재앙을 생각한다면 음식 쓰레기 문제는 더욱 쉽게 넘어갈 것이 아니다. 정부는 오래전부터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도 대대적인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운동을 벌여왔다. 그럼에도 현재 생활폐기물 중에 음식물 쓰레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23%를 넘어서고 있다. 이는 10%에 불과한 미국에 비하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최근 음식물 쓰레기 분리 배출의 확대에 따라 음식 폐기물의 재활용률이 80%를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분리 배출된 음식물 쓰레기는 여러 처리과정을 통해 가축 사료와 퇴비로 사용된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의 양을 줄이는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의 배출원별로 보면 놀랍게도 가정이 71%를 차지한다. 집에서 무심코 버린 라면 국물 한 컵을 맑은 물로 바꾸기 위해서는 5000컵의 물이 필요하다. 김치찌개 한 컵은 1만 컵의 물, 우유 한 컵은 5만 컵의 물이 필요하다.

    몇 개월 전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에서 식당의 남은 음식물 재사용을 고발해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잔반을 재활용해서 환경을 지키고 있다’는 네티즌의 비아냥도 있었다. 최근 음식점 주인이 가장 꺼리는 손님으로 먹지도 않는 반찬을 계속해서 더 달라고 하는 손님을 꼽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음식에 대한 야박함은 우리 정서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떡 벌어지게 차린 한 상을 마다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음식 맛보다도 넉넉하게 차려야 손님에 대한 예의라 생각해서 그렇게 해주지 않는 식당을 꺼릴지도 모른다. 내 식구 먹는데 좀 더 넉넉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넉넉함이 우리에게 재앙으로 돌아와 더 큰 아픔을 주고 있다. 이제 ‘먹을 만큼’의 절제와 ‘서운해 하지 않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어쩌면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선호보다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의 노력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좀 더 절제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서 살아가는 삶이 더 풍족한 삶일 것이다. 거기에 우리가 진정 그리는 녹색 희망이 있을 것이다.

    정한진(창원전문대 식품조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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