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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절군발류(絶群拔類)- 무리에서 뛰어나다

  • 기사입력 : 2009-05-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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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을 살다 보면 재주나 학문이 아주 뛰어난 사람을 간혹 볼 수가 있다. 매우 뛰어나면 모든 사람이 다 인정을 하게 되어, 그 실력에 대하여 논란할 것도 없게 된다. 공부나 기술에 있어서 그정도 경지까지 가야만, 달인(達人)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시절에는 군 소재지라야 태권도 도장이 있었는데, 어느 날 필자가 사는 면단위에도 태권도 도장이 생겼다. 야간에 초등학교 교실을 빌려서 태권도 도장을 차렸다. 처음으로 도장을 열었는데 관장은 군소재지 도장의 관장이 겸임하고, 직접 운동을 지도하는 사범(師範)은 군소재지 도장에서 오랫동안 태권도를 배워 2단을 딴 고수였다.

    처음으로 도장을 차리게 되면, 사범은 인근에서 싸움 잘한다고 소문난 사람과 대련을 붙어 멋지게 주먹으로 제압하여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야만 인근의 청소년들이 대단하게 생각하여 배우러 오게 되는 것이다.

    새로 부임한 사범은, 그 면에서 싸움 잘한다고 소문난 청년을 찾아가 자기와 공개적으로 대련을 붙자고 도전을 하였다. 그 청년은 평소에 온순하여 남과 싸움을 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몇 번 사양하다가 마지 못하여 응하였다. 그 청년은 도장에서 정식으로 태권도나 다른 격투기를 배워본 적이 없고,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집안 일 거들면서 자기 집에서 아령이나 역도로 신체를 단련하고 샌드백을 치는 정도였다.

    조그마한 시골 면단위의 일이었지만, 태권도 사범과 그 청년이 한판 붙는다고 하니, 대단한 화제가 되었다. 사범이 이긴다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개중에는 그 청년은 운동 신경을 타고난 사람이니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며칠 지난 어느 날 저녁, 초등학교 강당으로 쓰는 보통 교실 두 배 크기의 큰 교실에서 책상을 뒤로 다 밀치고, 인근의 여러 청소년들이 빽빽이 모여서 구경하는 가운데그 사범과 청년이 대련을 붙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시작하면서부터 그 사범은 손발 한 번 제대로 놀려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무수히 두들겨 맞다가 결국 항복하였다. 그 일로 인하여 그에게 태권도를 배우겠다는 지원자가 아무도 없어 한 달쯤 뒤에 도장은 문을 닫았고 사범은 사라지고 말았다.

    대련할 때 그 청년의 손발 동작이 너무나 빠르고 정확하여 구경한 사람 가운데 탄복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나중에 그 청년은 도시로 나가서 어떤 요인의 경호원이 되어 생활했다.

    지난 3일 필리핀의 권투영웅 파퀴아오와 영국의 무패(無敗) 권투선수 해튼과의 IBO 세계 라이트웰터급 챔피언 결정전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었다. 파퀴아오는 1회에 두 번의 다운을 빼앗고, 2회에 강력한 레프트 훅 한방으로 해튼을 KO시켜 버렸다. 파퀴아오가 몸집이 작은데도 그 주먹을 맞은 해튼이 큰 대자로 뻗어 죽는 시늉을 하였다.

    258억원라는 어마어마한 개런티가 걸린 세기의 대결이라고 했지만, 5분여 만에 파퀴아오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버렸다. 너무나 솜씨가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이미 권투 4체급을 석권하였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복싱 강자들을 굴복시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동양인은 팔이 짧아 통상적으로 권투에서 불리하다고 하지만, 기량(技倆)이 워낙 뛰어나면, 신체적 악조건도 문제가 되지 않는가 보다. 어떤 권투팬은, “내 생애에 파퀴아오 같은 이런 복싱선수가 태어나 너무나 행복하다”라고까지 할 정도로 그의 기량은 정말 다시 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났다.

    * 絶 : 끊어질 절. 뛰어날 절. * 群 : 무리 군 * 拔 : 뽑힐 발. 뛰어날 발. * 類 : 무리 류.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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