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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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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사회복지사들의 초심(初心)-이선호(수석논설위원)

  • 기사입력 : 2009-04-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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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복지사는 최근 몇 년 사이 뜨는 직업 중의 하나였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고령화 사회로 갈수록 이들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유망직업 리스트에도 근년에 빠진 적이 없다. 사회복지사는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듯 경제적·사회적·심리적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준다. 사회가 병들고 시들지 않도록 ‘영양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처한 현실은 팍팍하다. 일선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맡은 업무를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기초수급자, 독거노인, 영유아보육, 한부모가정, 바우처 사업, 긴급복지 등등 복지 대상자에 대한 관리, 상담, 지원에 따른 사업 수가 수백 가지가 넘는다. 보건복지가족부, 여성부, 인적자원부, 통일부, 보훈처 등 부처 이기주의가 빚은 관련 업무 법률만도 150개에 달한다. 광역·기초자치단체를 거쳐 읍면동으로 내려가면 동일 사업군이라도 항목별로 내용이 달라 더 복잡해진다.

    현재 전국의 사회복지전담공무원(사회복지사)은 1만여명에 불과하다. 복지직의 70%가 여성으로 출산·육아휴직 등을 감안하면 정원의 10% 이상이 상시 결원 상태다. 예컨대 기초수급 업무의 경우 1인당 약 600명의 수급권자를 담당해야 한다. 이들의 재산이나 소득이 바뀔 때마다 지원 규모를 변경해야 하고 챙겨야 할 보조금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업무의 속성상 소득 파악에서부터 사례 관리까지 일일이 수작업이다. 복지 마인드가 없다면 감내하기 힘들다는 푸념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도 이들은 공무원으로서의 신분이 보장된 덕에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선망하는 자리다.

    사회복지법인이나 시설에 종사하는 사회복지사의 근무 환경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저임금과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는 데다, 잡다한 행정 업무로 하루해가 짧다. 얼마 전 창원의 모 법인에서 일하던 사회복지사가 법인과의 다툼으로 사직서를 썼다. 7년차 경력이지만 한 달에 쥐는 돈이 100만원 남짓했다고 한다. 근무처를 옮겨 호봉을 인정받기 어려운 데다 후원금 명목으로 봉급에서 일정액을 공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반화시킬 순 없다 하더라도 사회복지사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사정이 이러니 사회복지사끼리 결혼하면 예비 수급자란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 가정복지도 못하면서 무슨 사회복지냐는 비아냥도 듣는다. 기실 낮은 임금은 가장 혼자로선 생활을 꾸려가기 벅차다. 맞벌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셈이다. 신분도 불안해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중규직’이란 말도 있다. 사회복지사들이 모이면 ‘번 아웃’(burn out)됐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의욕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결국 소진됐다는 뜻이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 잇따라 터진 보조금 착복사건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미꾸라지 몇 마리가 복지계를 흐려 놓는 바람에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현실이 억울하기만 하다. 봉사와 사랑의 버팀목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그러나 잇단 사건을 일부 개인의 비리로 몰아붙이거나 미흡한 복지전달체계 탓으로만 돌릴 일은 아니다. 초심을 잃은 사회복지사 모두의 자업자득이다.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에는 동료나 사회복지기관, 단체의 비윤리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도록 되어 있다. 선서만 했지 실천에는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사회복지사는 소외된 이들에게 ‘빛 그 자체’라고들 한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골목골목을 찾아다니며 마치 내 부모, 내 자식을 대하듯 하는 것을 보면 천사가 따로 없다. 많은 이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사람 냄새’를 전하는 당신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동료라는 이유로, 혹은 공직사회에서 왕따당할까 봐 비리를 못 본 척한다면 제2, 3의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민간기관 종사자들도 복지 외피만 입은 시설 등의 횡포를 외면해선 안 된다. 사회복지사들이 초심으로 돌아가 윤리강령을 제대로 실천할 때 진정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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