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7일 (토)
전체메뉴

[금요칼럼] 중국과 이웃으로 살아가기 - 장성진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08-12-26 00:00:00
  •   

  • 금요칼럼

    한국과 중국은 근 20년간 거의 모든 분야에서 무척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우호적 교류를 진전시켜 왔다. 그런데 중국이 이른바 개혁 개방 30주년을 맞는 올해는 눈에 띄게 서로 어그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서해에서 중국 어선과 한국 경찰이 살벌하게 충돌하고, 네티즌 사이에는 ‘혐한’이라는 용어까지 등장시키면서 감정상의 상처를 내고, 한국 대학에 유학하는 중국 학생들의 불법 취업이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졌다. 급기야 중국 내 외자 기업 불법 철수 문제를 다루면서 야반도주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난제가 속출했다.

    지금에 와서 일이 생겨났다기보다 잠재해 있던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고 보아야 한다. 교류의 진행이 너무 빨라서 미처 예견하지 못했던 면도 있고, 시대의 흐름을 낙관적으로만 받아들인 면도 있다.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기업 분야와 유학생 분야이다. 한 가지는 즉각 수치화하는 돈 거래이기 때문이고, 한 가지는 다음 세대에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사람 관리이기 때문이다. 좀 편하게 생각하자면 기업 문제는 본래 상황에 따라 수시로 생기고 해결되는 성격의 것이기에 사안에 따라 대처하면 될 것이고, 유학생 문제는 일부 학생의 과도한 아르바이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솔직히 한국 사람들은 어떤 사안에 대해 이렇게 포괄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상대적으로 합리성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합리성에 관한 상징적 발언을 들어볼 만하다.

    중국의 대표적인 근대 계몽 사상가이자 문사인 량치차오(梁啓超)는 ‘중국 학술사상 변천의 대세’라는 긴 글 총론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 가지가 특이하니, 종교가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식견이 얕은 사람은 이를 국가의 수치라고도 여기지만, 이는 오히려 영광스러운 일이며 욕됨은 아니다. 종교는 사회가 유치한 시대에는 약간의 효험이 있으나 이미 성장한 뒤에는 그 해독이 많고 이익은 적다. 왜냐하면 학술과 사상의 자유를 저해하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학술과 사상의 발달은 항상 종교보다 우월한 입장이었다.” 이어서 그는 중국의 국토, 역사, 문물 등에 대하여 감격스러운 어조로 최고임을 내세운 뒤, 지구상에 남아 있는 단 두 개의 문명 중 하나인 중국 문명이 유럽 문명을 신부로 맞아들여 집안의 대들보를 낳아 기르자고 외친다.

    량치차오의 발언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현대 중국 사회의 형성에 깊은 영향을 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비록 오늘날 정치지도자가 공식적으로 신해혁명, 사회주의 혁명, 개혁 개방을 3대 혁명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 이런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주체는 일군의 근대 계몽사상가들이며, 그 중심에 량치차오가 있었던 것이다.

    앞서 인용한 그의 발언을 한 단어로 요약해보면 합리성, 그것이 현실적으로 구현되는 공리성이다. 합리성을 가장 멀리 초극한 종교를 합리성의 실체인 학술과 사상의 영역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모든 가치의 위상을 정립시킨 것이다. 동시에 실재하는 문명의 귀착점을 중국화로 설정하여 외부를 수용하려고 하였다. 흔히 중국인들이 일을 처리할 때 사람 중심으로, ‘관계’ 위주로 한다고 여기지만 그 속에는 정확한 공리성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을 남이 나서서 장점이나 단점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노동력이나 사회 제도를 고려하여 중국에 진출하건, 대학이 몸집 불리기에 총력을 기울여 유학생을 유치하건 그것은 이쪽의 선택이고, 그 과정에서 중시되는 것은 서로의 이해를 저울질하는 공리성이다.

    유사 이래 오랜 세월 동안 온갖 화해와 위화를 다 겪은 중국과 보다 좋은 이웃으로 지내려면 그들의 공리적 사고를 잘 이해하고 활용해야 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와 ‘즐거움 누리시고 부자 되세요(恭喜發財)’라는 신년 인사에도 공통점과 차이가 함께 들어 있다.

    장 성 진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