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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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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강기갑과 정치, 역지사지 - 조용호 (논설실장)

  • 기사입력 : 2008-08-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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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부 시절 YS의 오른팔인 최형우씨가 시위 도중 경찰버스(닭장차)에 강제로 태워져 끌려갈 때 이렇게 말했다. “집권하면 이 놈의 닭장차부터 없애버려야지.” 그런데 YS가 대통령이 되고, 그가 내무부장관이 되었을 때 “닭장차 없앨순 없지, 때론 필요해”라고 말했다. 황산성 변호사가 재야에 있을 때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무능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 그녀가 환경부 장관이 되었을 때 하는 말, “우리나라 공무원처럼 능력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없어요.” 발언의 내용은 다소 다르다 할지라도 사실관계 방향은 다 맞다. 정치코미디가 아닌 정치 현실이다.

    과거사 이야기가 느닷없이 나오게 된 데에는 사천의 강기갑 국회의원 때문이다. 강 의원은 사천시가 추진하는 광포만 일반산업단지 조성과 관련, 광포만을 매립하는데 동의한다고 서명했다. 중앙연안관리심의가 열리기 하루전인 6월7일로 지역주민들과 사천시 관계자들이 찾아와 “낙후된 지역발전을 위해 광포만 매립은 이뤄져야 한다”고 요청하자, “개인적인 소신은 반대이지만 지역민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며 찬성서명을 한 것이다.

    그러자 환경단체들이 반발했다. 평소 생명을 존중한다는 정치적 소신에 오점을 남기고, 개발논리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강 의원의 모습이 안타깝다며 비난의 화살을 쏘았다. 그러자 강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사과성명을 올렸다. “지역주민의 절박한 생존권 문제와 생태 환경 문제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며 “진보정치를 대변해온 저의 한 순간 행동으로 많은 분들에게 걱정과 실망을 안겨드리게 되었다”고 했다. 매립신청은 기각됐다. 상황이 이리되자 지역에서는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소신도 없고 지역발전도 걱정 안하는 강기갑은 어느 지역 국회의원이냐.’

    세상은 이런 것이다. 문제는 그가 민주노동당 소속의 전국구 국회의원일 때와 현역 실세였던 이방호 전 의원을 꺾고 사천을 대변하는 당당한 지역구 의원이 되었을 때와 엄연한 차이다. 그런 위상의 현격한 변화, 명실상부한 지역구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매립에 찬성했다가, 또한 그로인해 사과하는 어정쩡한 모양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마도 ‘양팔 다 드는’ 이런 현상은 그의 임기내내 갈 수 있다. 하지만 또다시 매립 서명요청을 받을 때에는 환경단체에게 역지사지로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치이고, 지역주민을 이길 정치인은 없기 때문이다.유명정치인에게 ‘종교가 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다종교’(多宗敎)라고 답한다. 굳이 특정종교 하나만 믿는다고 하여 전체주민과 입장을 달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세상 이치란 묘한 것이고, 남의 말 쉽게 할 수 없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다 이해된다’는 뜻이다.

    환경론자나 진보주의자가 지역을 대변하고 이끄는 국회의원이나 단체장이 되고서도 일방적인 환경보호, 보수반대로만 갈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자연인인 재야(在野) 때와 지역과 주민을 생각하는 관직의 재조(在朝) 때와는 엄연히 다르다.

    요즘 화제인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4대 대가족을 꾸려나가는 ‘맏며느리 엄마’(김혜자 扮)가 1년 가출을 해버렸다. 도망간 가출이 아니고 집안어른의 정식 허가를 받은 1년 장기휴가이다. 이를 두고 ‘엄마에게 혼자만의 휴식이 필요하다’, ‘엄마만 힘드냐. 너무 이기주의적이다’라는 찬반이 엇갈린다 한다. 이 문제 또한 며느리의 입장, 남편의 입장, 가족의 입장으로 각기 생각해보면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어찌됐던 중요한 사실은, 주부라고 일만 하며 가정만 꾸릴 수 없는 법, 자유와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아주 강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거 모르면 정말 ‘간 큰 남자’다. 또한 4대 대가족을 모신 경험없는 사람들은 쉽게 말할 수 없다. 복더위에 열내면 더 덥다. 더울수록 식힐 수 있는 ‘역지사지’가 떠오른다.

    금요칼럼

    조 용 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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