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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말 없는 다수 국민이 있다 - 조용호 (논설실장)

  • 기사입력 : 2008-07-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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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도심의 촛불집회에 대해 지방지는 지역적 문제로 중앙지처럼 자세한 보도는 하지 않는 경향이다. 그러나 지금 촛불은 중앙-지방을 가리지 않고 전 국민의 화두가 되어 있다. 촛불이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빨아들이고 있는 블랙홀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을 가진다.

    첫째는 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시화풍년’(時和豊年)과 ‘법과 질서’는 어디로 갔느냐 하는 것이다. 나라가 태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는 이 말은 지난해 말 이 대통령 당선자가 2008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택한 것이다. 또한 “국가도 국민도, 대통령도 법 질서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천명했다.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 차기 대통령의 발표에 국민들은 많은 기대를 했는데 왜 지금 두 가지 모두 멀어져 버린 상황이 되었는가.

    둘째는 국민들은 왜 힘든 영어 용어를 다 알아야 되느냐 하는 것이다. USTR(미무역대표부), SRM(특정위험물질), QSA(품질체계평가), EV(수출증명), 다우너소(주저앉은 소), vCJD(인간광우병) CJD(크로이츠펠트-야콥병) 등등. 예부터 좋은 정치란 백성이 그 정치를 모르고, ‘등 따시고 배부르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왜 이렇게 어려운 용어까지 알아야만 하는가. 그 일차적 이유가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이었을 것이다. 4월 첫 협상에서 우리 대표단은 왜 그렇게 성급했는가.

    셋째는 두 달 넘게 진행되고 있는 촛불집회에서 쇠고기 재협상을 주장하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거의 광우병에 걸릴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정작 시판을 해보니 잘 팔려 나가 버렸다. 그것도 이제 막 들여온 것도 아니고, 지난해 10월 검역 중단 전에 들어와 6~7개월이나 냉동창고에 보관된 것이었는데 문을 열자마자 다 팔려 버렸다. 국민 대부분의 정서가 미국산 쇠고기 반대라면 안 팔려야 한다. 가격이 싸다고 해서 미국산을 사 먹을 한국주부들이 아니다.

    넷째는 민주노총은 왜 근로조건과 관계없는 파업을 강행했는가 하는 것이다. 아무리 찬반투표를 했고, 올해 임단협 협상 투쟁승리라는 명분이 있다 해도 파업의 사유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 물가폭등 대책, 대운하 폐기 등이라면 근로조건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생산에 타격을 주는 파업이더라도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하겠다”는 이석행 위원장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서울의 촛불집회는 처음에는 순수하게 비폭력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6월 중순 이후부터 과격한 행태로 변하고, 내용도 쇠고기만의 문제가 아닌 정권퇴진 등 정치집회 행태로 변해버렸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 부족과 집회 과정에서의 상호 마찰 등 여러 문제가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결국 정부·여당과 경찰은 “불법폭력 시위는 용납하지 않고, 원칙적 대응으로 법질서를 지키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대책회의 및 야권 등은 “경찰의 과잉진압, 공안정국 회귀”라고 맞서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원유가가 배럴당 146달러까지 치솟아 제3차 오일쇼크에 직면해 있다. 이로 인해 주식·채권값 하락, 원화가치가 모두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하반기 경기는 더욱 나빠진다는 예측이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다. OPEC의장의 경고대로 석유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올라간다면 그저 암담해질 뿐이다.

    촛불집회 참여자와, 비참여자, 그리고 정부도 경찰도 노조도 모두 대한국민이고, 나라를 걱정한다. 또한 나서 말하지 않고 생업현장과 가정에서 묵묵히 일하는 수많은 국민들도 역시 나라를 걱정한다. ‘촛불’은 대통령을 무섭게 했고, ‘뼈저린 반성’도 하도록 했다.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성과를 올렸다. 그렇다면 경제 위기의 시대, 이제 촛불을 내려 안정을 취하고, 추이를 좀 지켜보는 것이 수순일 것이다. 그래도 잘못하면 또 촛불을 들 수 있다. 강(强)대 강(强)은 서로를 다치게 하고, 파국을 가져온다. 말없는 다수 국민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 유추한다.

    금요칼럼

    조 용 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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