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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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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213>점입가경(漸入佳境)

  • 기사입력 : 2007-12-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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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수록 점점 재미있어진다

    중국(中國)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진(晉)나라에 고개지(顧愷之)란 유명한 화가가 있었다. 그는 인물화를 잘 그렸을 뿐만 아니라, 박학다재(博學多才)하였다. 그리고 또 사람이 멍청한 것으로도 유명하였다. 그래서 세상에서 그를 삼절(三絶)이라고 불렀다. 곧 세 가지에 뛰어났다는 뜻이니, 그림에 뛰어났고, 재주가 뛰어났고, 멍청한 것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양자강(揚子江) 이남은 날씨가 따뜻하기 때문에 사탕수수가 자랄 수 있다. 요즈음 계림(桂林) 같은 데 가 보면, 현지 농민들이 한 다발씩 어깨에 메고 여행객들을 상대로 팔려고 애를 쓴다. 대나무처럼 생겼는데, 껍질은 짙은 보랏빛이다. 사탕수수는 밑둥치가 달고 위로 갈수록 덜 달기 때문에 사람들이 먹을 때 일반적으로 밑에서부터 먹는다.

    그러나 고개지는 사탕수수를 먹을 때, 혼자 줄기 끝에서부터 먹어 내려왔다.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물었더니, “사탕수수를 위에서부터 먹어가면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더 달아지는 법이오”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를 멍청하다고 여겼지만, 실제로는 그를 멍청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멍청한 것이다. 좋은 것을 미리 먹어버리는 것보다는 기대감을 가지면서 맛없는 것부터 먹는 것이 더 나은 방식이다. 편하고 좋은 것부터 먼저 하고 힘들고 귀찮은 것을 나중으로 미루어 놓으면 인생이 언제나 괴롭다. 어릴 적 경험으로 볼 때, 명절이나 생일 등을 기다릴 때가 한없이 좋고, 지나가고 나면 그만 허전해진다. 아무리 대단한 운동경기도 결과를 알고서 보면 박진감(迫眞感)이 없어진다.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이 세상은 살맛이 없어질 것이다. 흔히 세 가지 공인된 거짓말 가운데 하나가 ‘노인들이 죽어야 되겠다’라고 말하는 것이라 한다. 몸이 말을 안 듣고 현실생활이 뜻대로 되지 않지만, 그래도 ‘손자 손녀 취직하고 결혼하고 증손자 낳는 것 보고 죽어야지’ 하는 기대 때문에 당장 죽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여러 차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일어났기 때문이다. 여당은 몇 차례에 걸친 탈당, 분열, 통합, 재통합을 거쳐 정동영 후보로 최종 귀착되었다. 한나라당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당대표 간에 분열이 우려되는 치열한 경선공방을 거쳐 간발의 표 차이로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되었다. 그러다가 11월 초순에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던 한나라당 소속의 이회창씨가 탈당을 하여 보수진영의 지지자를 분할하며 대선출마를 선언하였다. 그 이후 이명박 후보는 BBK의혹으로 야당후보의 자리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혹을 넘기고, 12월 5일 검찰의 발표로 무혐의(無嫌疑)로 의혹을 벗었다.

    이제 8일 남은 대선에 결과가 어떻게 될지 지켜보는 가운데 대선은 점점 더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누가 국가를 잘 다스릴지 능력과 정책을 보아 투표해야겠다.

    (* 漸 : 점점 점. * 入 : 들어갈 입.

    * 佳 : 아름다울 가. * 境 : 지경 경.)

    허권수(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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