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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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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감신(至誠感神) - 지극한 정성은 귀신도 감동시킨다 (212)

  • 기사입력 : 2007-12-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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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에게 24대조 되는 휘자(諱字)가 유전(有全)인 조상이 계신데, 고려(高麗) 후기 충렬왕(忠烈王) 때의 인물이다. 그 위에 중시조(中始祖)로부터 3대가 더 있지만, ‘고려사(高麗史)’ 등에 기록이 남아 있는 분은 이 분이 처음이다. 그런데 족보(族譜)에 실린 이 분의 행적 끝에 ‘묘소는 강화도(江華島) 불곡(佛谷)이다. 일설에는 탑곡(塔谷)이라 하나 상고할 수 없다’라고 되어 있다.

    그 후손 가운데 허관구(許官九)라는 사람이 있는데, 강원도 홍천(洪川)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을 하였다. 오로지 빈약한 이 기록에 근거하여 조상의 묘소를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하고 매년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마다 배낭을 짊어지고 강화도에서 ‘불(佛)’자나 ‘탑(塔)’자와 관계되는 지명을 찾아 26년 동안 다녔다.

    처음에는 불평을 늘어놓던 부인도 남편의 정성에 감동되어 같이 탐사(探査)에 나섰다. 미쳤다고 비웃는 동료나 이웃 사람들도 점점 많아져 갔다. 남들은 방학이 되면 여행이다 독서다 해서 평상시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하는데, 이 분은 조상 묘소 찾는 일로 교직생활의 방학을 다 보냈다.

    강화도 어디든지 안 가본 곳이 없었지만, 끝내 묘소는 찾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포기한 그 다음 해 여름 방학 때 밤에 잠을 자고 있는데, 꿈에 신이 나타나서, “올해는 왜 조상 묘소를 찾아 나서지 않느냐? 지난번에 갔던 그 골짜기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있는데…”라고 말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일어나 꿈인가 생신가 하고 앉은 채로 기다리다가 날이 새기가 무섭게 배낭을 지고 강화도로 갔다. 꿈에 신이 계시한 곳을 찾아가니, 땅속에서 검은 돌이 보이기에 손으로 흙을 걷고 자세히 보니, ‘高麗門下侍中許公有全之墓’라는 묘표(墓表)가 나타났다. 그곳은 지금 지명으로는 강화도 불은면(佛恩面)이고, 족보에서 ‘불곡(佛谷)’이라 했으니, 족보의 기록이 근거 없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다시 봉분을 쌓고 재실을 지어 묘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경기도에서는 문화재로 지정하였고, 역사학계에서는 고려후기 무덤 형태에 대한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분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정성을 다하다 보니, 결국 영감이 떠오른 것이다. 이 것은 과학적으로는 증명이 안 되지만 골똘히 생각하면 꿈에 해결책이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공부나 기술도 머리가 좋고 나쁨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정성이 좌우한다.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자주 보는 사람은 이해도 잘 되고 기억도 잘 될 수 있다. 그러나 머리만 믿고서 태만히 한다면 공부가 되고 기술이 습득되겠는가?

    ‘서경(書經)’에 ‘오직 덕(德)만이 하늘을 움직여 아무리 멀리 있는 것도 이르게 할 수 있다. 지극한 정성이면 귀신도 감동시키는데, 이 묘족(苗族)이겠는가?’라는 구절이 있다. 남방의 소수민족인 묘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하(夏)나라 우(禹)임금은 처음에 무력을 동원해서 정벌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신하의 건의를 받아들여 덕(德)을 가지고 교화를 펼쳐나가 결국 그들을 감화시켜 평화를 되찾았다. 지극한 정성이면 되지 않을 일이 없다. ‘지성감천(至誠感天)’이라는 말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至 : 지극할 지, 이를 지. *誠 : 정성 성. *感 : 느낄 감. *神 : 귀신 신.)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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