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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아행아소(我行我素)

  • 기사입력 : 2007-11-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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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퍄오정씨, 진종미, 따치우, 칭조우, 야뤼쟝.

    우리나라 사람들이 박정희(朴正熙), 김종필(金鍾泌), 대구(大邱), 경주(慶州), 압록강(鴨綠江) 이라고 발음하는 것을 중국 사람들이 발음하는 대로 적어 본 것이다. 중국어를 능숙하게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알아듣기는커녕, ‘퍄오정씨’라는 발음을 듣고 ‘박정희’를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나라나 일본(日本)의 사람 이름이나 땅 이름을 자기네 발음 그대로 발음한다. 심지어 서양의 사람 이름이나 땅 이름도 자기네 식의 한자로 바꾸어 발음한다. ‘러시아’를 ‘어러스[俄羅斯]’, ‘스위스’를 ‘루이스[瑞士]’, ‘아이슬랜드’를 ‘삥따오’라고 하는 것과 같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제정한 외국의 표기 및 발음 기준은 현지의 발음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강택민(江澤民), 주용기(朱鎔基), 무석(無錫), 흑룡강(黑龍江)이라고 발음하거나 표기하면 안 되고, 쟝쯔민, 주롱지, 우시, 헤이롱쟝으로 발음하고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어도 우리 식으로 발음하면 안 되고, 동경(東京)을 ‘도쿄’, 전중(田中)을 ‘다나카’로 발음하도록 원칙을 정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그 원칙을 따르고 있다.

    일본어는 모르겠지만, 중국어의 경우는 사성(四聲)이 있기 때문에 한글로 표기된 대로 발음한다고 해서 중국 사람들이 알아듣는 것이 아니다. 성조가 약간만 달라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확하게 현지발음대로 한다고 애를 써서 발음해도 못 알아 듣기는 마찬가지다.

    등소평(鄧小平) 같은 사람은 워낙 알려졌기에 ‘등소평’으로 발음한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인지 다 알지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거나 새로 등장한 사람일 경우, 중국어 발음을 따라서 우리 글자로 표기하면, 머리에 그 사람의 상(像)이 고정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 발음을 보고서 어떤 한자를 쓰는지를 유추(類推)해 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시진핑’이라는 새로 정치국 상무위원(政治局 常務委員)에 임명된 사람이 ‘습근평(習近平)’인 줄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성(姓)이 될 수 있는 ‘시’자 발음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하여 잘하는 것과 외래어를 현지 발음대로 발음하고 표기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다. 외래어를 현지 발음대로 발음하고 표기한다고 해서 전 국민의 외국어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우리 조상들이 수천년 동안 사용해 오던 한자(漢字)의 발음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다 버리고, 현지 발음을 따라서 발음하고 표기하라고 강요하니, 정말 주체성이 없다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국민들이 중국어 일본어 전문가가 되어야만 중국이나 일본의 지명이나 인명을 발음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디까지는 중국어 원음대로 하고, 어디까지는 우리 한자음으로 발음할 것인가 하는 명확한 경계선도 없다. ‘중국국무원(中國國務院)’은 ‘쭝꾸어꾸어우위엔’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중국국무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국무원이 있는 지점인 ‘중남해(中南海)’는 ‘쭝난하이’라고 발음한다.

    이래저래 국민들의 정신적 부담을 주는 ‘현지음대로 발음하고 표기해야 한다’는 원칙을 왜 고수해야 하는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전혀 고려해본 적도 없는 자주성 없는 언어정책을.

    우리도 우리의 길을 가야지, 중국 사람, 일본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我 : 나 아. * 行 : 갈 행. * 素 : 바탕 소)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나는 나의 본래대로 행한다

    <208>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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