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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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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사봉공(滅私奉公)

  • 기사입력 : 2007-10-02 0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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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적인 것을 없애고 공적인 것을 받들어 행한다

    우리 말의 문법체계를 연구하고 한글전용운동을 펼친 최현배(崔鉉培)교수는 자신의 전공분야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또 그 처신(處身)이 엄정(嚴正)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한때 연세대학교 부총장을 맡아 일한 적이 있었는데, 편지지와 편지 봉투를 두 가지를 갖추어 두고 썼다. 학교 공무(公務)로 편지를 보낼 일이 있을 때는 공용의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썼고, 개인적인 일로 편지를 보낼 때는 개인용 편지지와 봉투를 썼다. 당시는 차가 아주 귀했고, 차를 탈 수 있는 것 자체가 특권이었던 시절에 부총장이 사용할 수 있는 차가 배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차를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차를 타고 집행할 공무가 많지 않았다. 그는 버스로 출퇴근하였다.


    같은 국문과에 근무하던 김윤경(金允經)교수는 자기 딸을 시집보내면서 학교는 물론 같은 학과 교수에게까지도 알리지 않았다. “내 딸 시집보내는 일은 내 개인적인 일이므로 학과에 알릴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너무 지나친 것 같지만, 두 분이 이런 정신으로 살아갔으니, 나머지 일에도 얼마나 철저하게 공과 사를 가렸는지 미루어 알 수 있다. 오늘날은 이렇게 사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국가의 중요한 자리를 맡게 되면, 본인이 국가를 위해서 “내가 이 중요한 자리를 맡아 어떻게 일을 잘 처리하여 국가민족에게 도움을 주고, 역사에 남는 일을 할까?”를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고, “이 자리를 이용하여 어떻게 권위를 부리고, 친인척이나 친구들에게 특혜(特惠)를 주어 나의 존재를 부각시킬까?”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장관이 되면 그 부인은 물론이고 그 아들 딸, 형 동생 친구까지도 장관이 된 것처럼 처신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모택동(毛澤東)이 국가주석(國家主席)이 되자, 고향의 친인척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취직 자리를 부탁하려고 북경(北京)으로 찾아왔다. 모택동은 자신의 원고료를 모아 둔 돈에서 왕복차비와 약간의 용돈을 챙겨 주고는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모택동의 딸이 북경대학(北京大學) 역사과(歷史科)에 다니다가 방학 때 아버지의 숙소인 중남해(中南海 : 우리나라 靑瓦臺에 해당)에 와서 생활하고 있었다. 마침 감기가 심하게 들어 입맛이 없게 되자, 모택동의 비서들이 보다 못해 음식의 질이 조금 나은 공산당 간부식당에서 식사를 몇 끼 시켰다. 이 사실을 안 모택동이 “그 애가 간부식당에서 식사할 자격이 어디 있느냐?”고 노발대발하였다. 공사의 구분을 엄격히 하였다.


    지금 우리나라의 장관이나 대통령 비서들이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사로운 개인의 인정에 끌려 국가의 일을 망치고 국민의 혈세(血稅)를 멋대로 낭비하고 있다. 변양균 청와대 전 정책실장은 신정아라는 젊은 여인에게 무슨 책이 잡혔는지, 국가 정책을 어겨 가면서 온갖 방법으로 뒤를 봐주고 있다가 사건의 전모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공직자가 사사로이 자기의 위세를 부리거나 이름을 내기 위해서 이래도 되는 것일까?  요직만 맡으면 내 멋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큰 문제인 것 같다.

    더구나 공적인 일을 망치면서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위해 국가 권력과 권위를 사용한다면, 나라가 병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묵묵히 자기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은 말단하위직에 머물러 박봉에 시달리는데, 이런 부류의 엉터리 인간들이 출세가도를 달려, 국정(國政)을 좌지우지하니, 대한민국이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 滅 : 없앨 멸. * 私 : 사사로울 사.  * 奉 : 받들 봉. * 公 : 공변될 공.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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