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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7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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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칼럼] 우리에게 개성(開城)은/심재혁 (주)모빌일렉트론 대표

  • 기사입력 : 2007-07-23 0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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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우리에게 개성(開城)이라는 북한의 한 도시가 주는 의미는 다중적이다. 자본주의의 여력이 파고드는 개방의 전진기지인가 하면 그래도 여전히 완고하고 집체적인 북한의 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념과 체제의 관점에서 보면 과거 우리와 적대적으로 치열하게 대립했던 `괴뢰의 도시'이고, 그래서 명백히 적지(敵地)일 뿐인 곳이 바로 개성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이런 교조적 해석은 의미가 없다. 이미 이곳에 우리 기업이 진출해 있고,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 또한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은 우리 영토를 `한반도와 부속 도서'로 규정하고 있다.

      원론적으로 해석하자면 북한은 잠재적인 우리의 영토이며 따라서 그곳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얼마 전, 그 개성에 다녀와서 느낀 소회는 `이제 체제와 이념의 간극을 민족의 이름으로 복원하고 치유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한 자본주의자의 눈에 비친 개성은 초라하다 못해 삭막했다. 과거 고려 왕조의 자취가 선연한, 그래서 여전히 고색창연할 것이라는 기대는 일순간에 무너졌다. 주변의 산야는 헐벗었고, 궁끼가 흐르는 시가지에는 배곯던 시절의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다. 전기나 용수는 물론 주민들의 모습 어디에서도 역동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그들과 비교해 우리의 배부름이 모든 면에서 가치우월적일 수는 없다. 물질적 부유함이 풍요로운 정신의 가치를 따라잡지 못해 부끄럽거나 왜소하다고 느낀 적이 왜 없을까만, 그러나 내 눈에 비친 북한은 그런 물질의 대칭적 가치조차 갖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선지 방북 중 내내 무참한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를 않았고, 문득 `퍼주기'라는 우리 내부의 시빗거리가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대북지원을 `퍼주기'라고 말한다. 국민적 합의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일리가 있다. 군용으로 전용되고 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시선을 북한의 실정에 맞추고, 그 배경에 앞서 언급한 헌법정신을 깔고 들여다 보면 생각은 이내 달라진다. 우리의 최고 전범(典範)인 헌법이 말하듯 통일은 민족의 숙원이고, 그래서 반드시 이뤄야 하는 것이라면 이제 그 방법을 강구하고 고민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 이후를 걱정하곤 한다. 한순간에 통일이 될 경우, 남북한의 문화적, 경제적 괴리를 극복하기 어렵고, 체제와 정서도 달라 엄청난 혼란이 닥칠 것이라는 것이다. 당연한 우려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북한에 우리의 여력을 전달해 그들과 우리 사이에 파인 간극을 좁혀 나가는 노력 역시 명분과 실리 양면에서 충분한 당위성과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쉬운 길을 두고 에둘러 어려운 길을 돌아가는 것은 미숙함이 아니겠는가. 만약 우리의 여력이 북한에 전달돼 주거와 먹거리가 해결된다면 이미 반쯤은 통일을 이룬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지금도 기억한다. 옛 소련이 자본주의의 빵 때문에 그 강철 같던 빗장을 열고 `공산(共産)'의 깃발을 내리던 때를.

      굶주림 해소를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이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북에는 우리가 갖지 못한 부존자원과 값싼 노동력, 민족의 정신적 유산이 많이 잔존해 있다. 우리에게 남아도는 쌀을 그들에게 주고 그들의 자원을 개발해 활용한다면, 그래서 개인이 드나들고, 동남아나 중국으로 빠져나갈 우리 기업들이 그곳에 둥지를 틀고 끊임없이 오간다면 통일 이전에 우리에게는 경기부양의 호재가 될 것이고, 좀 잘사는 형제가 가난한 형제를 모른 척한다는 도덕적 부담감도 벗을 수 있으니 아무래도 실보다는 득이 훨씬 많은 투자 아니겠는가. 사실 통일이 더딘 것은 주변 강대국의 영향력 탓이 크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통일 이후에 우리의 국력이 배가되는 것을 두려워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고, 중국의 동북공정 목적과 고구려사 왜곡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한이 어렵게 빗장을 연 개성은 그래서 우리에게는 현실의 도시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도시이기도 하다. 현실에서는 이념의 장애가 엄존하지만 미래에는 이념의 자리를 민족의 동질성이 채우지 않겠는가. 바로 그때를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큰 틀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북핵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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