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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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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指鹿爲馬) -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

  • 기사입력 : 2007-06-05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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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원전 2세기쯤에 천하를 통일하여 황제가 되었던 진시황(秦始皇)은 지방 순시 도중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진시황의 뜻에 의하여 당연히 첫째 아들 부소(扶蘇)가 황제의 자리를 잇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부소는 똑똑하기 때문에 부소가 황제가 되면 자기 멋대로 정치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 환관(宦官) 조고(趙高)는 승상(丞相) 이사(李斯)와 짜고서 진시황의 조서(詔書 ; 황제의 명령이 담긴 글)를 위조하여 둘째 아들 호해(胡亥)를 세웠다. 호해는 멍청하기 때문에 자기들 멋대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얼마 뒤 간악한 조고는, 최고 실권자 이사가 반란에 연루되었다고 모함하여 감옥에 보내어 가혹한 형벌을 가한 뒤 이사와 전 가족을 사형에 처하였다. 천하가 조고의 손 안에 들어왔다. 조고는 마음 속으로 “언젠가는 황제가 되어야지”라는 야심을 갖고서 하나 하나 일을 진행해 나갔다.


    하루는 사람을 시켜 황제 앞에 사슴 한 마리를 끌고 오게 하여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신이 천하를 두루 다니다 좋은 말을 한 마리 얻었기에 바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황제가 보니, 조고가 가리키는 것은 말이 아니라 사슴이었다. 그는 웃으면서, “경(卿)은 잘못 되었소. 이것은 분명히 사슴인데, 경은 어째서 말이라고 하시오?”라고 했다. 그러자 조고는 정색을 하고서 “폐하! 아닙니다. 이것은 좋은 말입니다. 폐하께서 잘못 보셨습니다”라고 했다. 황제가 “경은 농담이 지나치군요. 어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시오. 내가 그것도 모르는 줄 아시오?”라고 약간 기분 나쁜 듯이 말했다.


    그러자 조고는, “아닙니다. 틀림없이 말입니다. 폐하께서 잘못 보셨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신의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조정의 대신들을 불러 한번 물어보십시오”라고 했다. “그렇게 하지요. 대신들이 눈이 있는데, 누가 사슴을 말이라고 하겠소?”라고 황제가 말했다.


    황제와 조고가 사슴을 사이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대신들을 한 사람씩 불러들여 “이것이 사슴인지 말인지 말해 보시오”라고 하자, 실권이 조고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대신들은 대부분 서슴지 않고 말을 보고 사슴이라고 대답했다. 개중에 양심이 있는 대신은 말없이 침묵했다. 조고에게 잘 보여야 자리를 보전할 수 있고, 사슴이라고 말했다가는 죽임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서, “아무리 그렇지만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겠느냐?”라고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나 `사슴을 가리켜서 말[指鹿爲馬]'이라고 하는 일이 21세기 민주화가 잘 되고, 선진국의 문턱에 서 있다는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부기관의 기자실 통폐합이 바로 `지록위마(指鹿爲馬)'와 같은 일이다. 청와대 홍보실이나 국정홍보처에서 대통령에게 아첨한다고 그런 법을 만들었을지라도, 국무회의에서는 그래도 논란은 좀 하고 통과해야 되지 않겠는가? 아무런 반대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다는 것은 `지록위마' 바로 그대로다.


    지금 국무위원 가운데는 과거 민주화 투쟁의 경력이 있는 사람, 언론계에서 필봉(筆鋒)을 휘두르던 사람, 시민단체 대표를 지낸 사람들도 많이 들어 있다. 자기와 노선이 다른 사람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무슨 일이든지 저항하고 반대하다가, 자기들이 정권을 잡으면 무슨 일이든지 찬성하는 사람들이다. 객관성이라든지 합리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러고서도 백성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 指 ; 가리킬 지. * 鹿 ; 사슴 록.  * 爲 ; 할 위. * 馬 ; 말 마)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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