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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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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186) 심원의마(心猿意馬)

  • 기사입력 : 2007-05-08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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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은 원숭이처럼 날뛰고 뜻은 말처럼 달린다)

      필자는 휴대전화[속칭 핸드폰]를 몇 년 전까지 갖고 있지 않았다. 많은 아는 사람들로부터 “자기 편하자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 되느냐?” 농담 반 진담 반의 핀잔을 자주 들었다. 그러다가 아는 분에게 끌려가 휴대전화를 구입했다.

      구입한 지 며칠 안 되어 일본 비자 수속을 할 일이 있었다. 여권용 사진이 필요해서 사진을 찍으려고 앉아 있는데. 벨이 울렸다. 받지 않고 사진사에게 “그냥 사진을 찍으시오”라고 했더니. 전화부터 먼저 받으라고 했다. 받아보니 다름 아닌 “일본비자는 5년 동안 쓸 수 있으니 전에 비자를 쓰면 됩니다”라는 부탁한 여행사의 통지였다. 당연히 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미안합니다”하고 사진관을 나왔다. 휴대전화 한 통화로 사진 경비를 절약하는 등 편리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동안 휴대전화 예찬론자가 되었다. 그러나 휴대전화 번호가 널리 알려지고부터는 도무지 무슨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책 읽으려고 책 펼치면 전화벨이 울리고. 통화 끝내고 나서 책 몇 줄 보면 또 벨이 울린다. “이러다가 안 되겠다” 싶어 사전에 약속한 경우가 아니면 휴대전화를 켜지 않고 지낸다. 불편한 점이 적지 않지만 부득이해서이다.

      휴대전화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우리를 편리하게 즐겁게 해주는 문명의 이기(利器)는 수없이 많다. 우리를 편리하게 즐겁게 해 주는 대신 그 해악(害惡) 또한 심각하다. 널리 보급된 텔레비전 같은 경우는 전 세계의 소식을 거의 동시에 알 수 있고. 중요한 공연이나 운동경기를 안방에서 생생하게 바로 즐길 수 있고. 저명한 사람의 강연 등을 바로 들을 수 있다. 그러나 텔레비전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다 남의 일이다. 자기 할 일을 미루어 놓고 남의 일에만 관심을 쏟게 만든다. 손학규씨가 탈당한 일은. 십 년이나 이십 년쯤 지나면 아무 비중도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탈당성명서 발표하는 중계방송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을 맞추고 있다.

      컴퓨터 인터넷은 알고 싶은 모든 정보를 순식간에 찾을 수 있는 편리함이 있다. 예를 들면 혼자의 힘으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일식(日蝕)’에 관한 기록을 다 찾으려면 7년 정도 걸리는데.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단 몇 초 이내에 다 찾아낸다.

      서양 수도원의 신부가 50년 걸려서 베껴놓은 자료를 초고속복사기로 복사하면 10분 이내에 전부 복사해 낼 수 있다. 얼마나 편리한가?
      그러나 휴대전화는 사람을 괜히 동분서주(東奔西走)하게 만든다. 전에는 아침에 출근하면 퇴근할 때까지 학교 안에 있었는데. 휴대전화가 생기고부터는 수시로 밖에 나갈 일이 생긴다. 그리고 회의나 강의 등을 할 때 벨 소리 때문에 방해받는 것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차 안에서 끊임없는 통화소리의 소음은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자기 차 있는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휴대전화 통화소음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다.

      텔레비전은 가족간의 대화를 완전히 끊어놓았고. 반가운 손님이 찾아 와도 텔레비전만 주시하다가 가게 만든다. 그리고 텔레비전은 건강에 아주 좋지 않다. 첫째 눈에 가장 나쁘다. 그리고 텔레비전의 내용에 빠져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으면 반드시 신경통 등이 찾아온다. 그리고 운동부족을 초래해 각종 현대병을 유발한다.

      인테넷은 정보검색의 편리함은 있지만. 정보의 95% 이상은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이고. 상당수는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음란물 마약류에 관한 것이다. 한번 빠져들면 중독이 되어 눈이 아무리 아파도.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역시 눈에 아주 안 좋고 좋지 않은 자세로 오래 있기에 건강을 해친다.

      복사기는 귀중한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지만. 자료를 눈여겨보지 않게 만들고 “다음에 복사하지”라는 생각 때문에 사람의 기억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현대인들은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편리하게 살고 있지만. 문명의 이기에 휘둘려 결국은 자기의 생각이나 생활이 없이 지내고 있다. 늘 바쁘다. 하루에 수십 통 수백 통의 통화를 해야 하고. 몇 시간 텔레비전 시청하고. 인터넷 검색 몇 시간 하고 나면. 하루가 훌쩍 가버린다. 한 달이 훌쩍 가고. 일 년이 훌쩍 흘러간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마음은 안정되지 못하여 마치 나무 위에서 끊임없이 왔다갔다하는 원숭이나 끝없이 달려가는 말 같다. 차분하게 자기 시간을 갖고 자기 생각을 하는 자기가 주인이 된 생활이 있어야 하겠다.
      (*. 心 ; 마음 심. *. 猿 ; 잔나비(원숭이) 원. *. 意 ; 뜻 의. 馬 ; 말 마)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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