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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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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185) 명실상부(名實相符)

  • 기사입력 : 2007-05-01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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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과 실제가 서로 들어맞다

      공자(孔子)의 제자인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묻기를. “위(衛)나라 임금님이 선생님을 초빙하여 정치를 하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장차 무엇부터 먼저 하시렵니까?”라고 물었다. 공자께서 “반드시 먼저 이름을 바로잡겠다”라고 하자. 자로가 “물정을 모르시는군요! 어찌 이름을 바로잡는다고 하십니까?”라고 불만스럽게 이야기했다. 공자는. “문화가 없구나! 자네는. 이름을 바로잡지 않으면 말이 순리(順理)롭지 못하고. 말이 순리롭지 못하면 일이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에는 모두 정확한 이름이 부여되어 있다. 사람. 원숭이. 동물. 식물. 나다. 죽다. 간다. 오다 등등. 이름이 정확하게 바로 잡혀야만 의사소통이 올바로 될 수 있고. 의사소통이 올바로 되어야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사회가 질서가 잡히게 된다. 그래서 이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데는 이름을 바로잡는 일이 중요하다.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공자에게 정치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곧 각자가 자기 이름대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란 것이다.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장관은 장관답게. 국회의원은 국회의원답게 역할을 하면 정치는 저절로 잘 되는 것이다. 각자가 자기 이름 값을 하면 된다. 선생은 선생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자기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이름을 바로 하지 못하면 윤리도덕은 무너지고 우리 사회는 어지러워지고 만다. 극단적인 예로 ‘독약(毒藥)’을 ‘물’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하면. 목이 말라 물을 찾았을 때. 독약을 다 가져다 주게 될 것이니.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름이 바로 되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어떤 중견소설가의 소설 제목 가운데 ‘순이 삼촌’이라는 것이 있다. 그 제목만 듣고는 그냥 ‘순이라는 아이의 삼촌’이겠지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그러다가 교육방송 ‘라디오 문학관’이란 프로에서 이 소설을 낭독해 주어 듣게 되었는데. 내용을 알고 보니. ‘순이 삼촌’은 ‘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기 집안의 고모뻘 되는 여자’였다. 소설가는 글을 통해서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다. 작가단체의 대표인 사람의 언어 사용이 이 정도이니.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말을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파괴하는 데 일조를 하고 있었다.

      한 십여 년 전에는 텔레비전 연속극에서 젊은 부녀자들이 남편을 ‘아빠’라고 불러 문제더니. 요즈음은 남편을 아예 ‘오빠’라고 부른다. ‘장인(丈人)’은 당연히 ‘아버님’. ‘장모(丈母)’는 ‘어머니’라고 부른다. 남편을 ‘아빠’라고 하는 것은 그래도. ‘누구의 아빠’라는 것을 생략하여 그렇게 부른다 하면 이해가 가지만.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기가 찰 일이다. 자기 자식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동생을 가진 사내 아이는 자기 여동생과 결혼할 수 있을 것으로 당연히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 정신적 혼란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자기 친오빠와 남편을 장차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장인 장모를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는 것은 인정상 좋아 보이지만. 하늘에 해가 둘이 아니듯이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 어머니는 오직 한 분씩만 존재하는 것이다. 장인 장모를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보고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면 더 좋지 않겠는가? 사람의 관계에는 다 친소(親疎)의 정도가 있는 것이다.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혼란의 시초다. 사리에 맞는 정확한 용어를 써서 인륜도덕을 회복하고. 사회의 질서를 회복하도록 다같이 노력해야겠다. 이름과 실제는 서로 들어맞아야 한다.

      (*. 名 : 이름 명. *. 實 : 열매 실. 실제. *. 相 : 서로 상. *. 符 : 들어맞을 부. 부절)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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