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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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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184) 창해유주(滄海遺珠)

  • 기사입력 : 2007-04-24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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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른 바다에 구슬을 버려 두다

      1950년대에 중국 북경사범대학(北京師範大學) 수학과에 장석민(蔣碩民)이라는 유명한 교수가 있었다. 22세 때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노벨상 후보에까지 오른 이 교수는 수학 실력이 출중(出衆)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품도 훌륭하여 학생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남에게 선물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책을 선물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에게서 책을 선물받은 학생들 가운데 지금 중국에서 유명한 수학자가 많이 활동하고 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그를 닮았으면 하는 그야말로 학생들의 우상이었다. 학생들의 학문적 인격적 모델이었다. 그 이후 북경사범대학 수학과를 나와서 교수를 하거나 교사를 하는 사람들은 강의할 적에 모두 오른쪽 손을 오른쪽 뺨에 갖다 대고. 왼쪽 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바치는 자세를 하고서 강의를 하였다. 그 교수가 그런 자세로 강의를 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흠모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닮은 것이다. 지금도 수학과만은 북경사대 수학과가 전국에서 제일 좋다고 평가를 받는다. 한 사람의 훌륭한 생각과 태도가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하겠다.

      어떤 학교에 훌륭한 선생님이 많으냐 적으냐에 따라서 그 학교의 수준이 달라진다. 학생들이 알게 모르게 따라 하기 때문이다. 맹자(孟子)는 “성인(聖人)은 백세(百世)의 스승이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성인의 한마디 말이 후세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이 되고. 힘이 되고 구원이 될 수 있다.

      얼핏 생각하면 학자나 선비들은 놀고 먹는 것 같아 보이지만. 세상에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 나라에 훌륭한 선비가 있어 훌륭한 말씀을 남겼고. 그 말씀에 따라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고 바르게 살아가게 되었을 때. 경찰. 검찰. 재판관. 교도관 등이 다 필요 없게 되고. 그들이 근무하는 관청도 다 필요 없게 될 것이니. 그 비용 절감이 어떠하겠는가? 조선시대(朝鮮時代) 유교(儒敎)를 국가의 통치이념(統治理念)으로 삼은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유교의 올바른 덕목(德目)에 따라 살아가면.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때문에 국가에서 강제적으로 처벌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니. 가장 이상적인 통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꿈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생각하시겠지만. 주변에 바르고 착한 사람이 많으면. 상당히 나쁜 사람도 바르고 착하게 되고. 주변에 나쁜 사람이 많으면 상당히 착한 사람도 별 부담없이 나쁜 짓을 하게 된다. 그래서 풍속(風俗)을 교화(敎化)하는 일을. 조선시대에는 지방장관들의 중요한 임무의 하나로 부여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교육자치를 표방하여 도지사나 시장 군수가 교육에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교육은 학교 교육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회 교육이 더 중요하다. 지금 윤리도덕이 무너지고 사회가 혼란한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지방장관들이 풍속의 교화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도 한 가지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각 고을마다 역사적으로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일제시대 이후 학교교육은 대부분 서양학문에 기초를 둔 지식전달만을 위주로 하고 있다. 상당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자기 고장에서 배출된 인물들에 대해서 거의 모른다. 그러다 보니 각 고을에서 낳은 훌륭한 인물들은 옛날 책 속에 박제된 인물로 남아 있다. 멀리 있는 인물보다 가까이 있는 인물에서 배우면 더 실감이 나서 효과가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조선시대 대단한 학자가 살았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 우리 나라를 대표할 만한 훌륭한 인물이 수업을 받았다”라고 하면. 살아 있는 교육이 되지 않겠는가?

      지난 4월 11일에 함안(咸安) 문화예술회관에서 함안이 낳은 대학자인 만성(晩醒) 박치복(朴致馥)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군단위에서 그 지역 출신 학자를 대상으로 하여 전국 규모의 학술대회를 개최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일 것이다. 다행히 함안의 문화원장과 군수를 비롯한 여러 기관장들의 이해가 있어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다른 고을에서도 본받아야 할 일이다.

      만성 선생 이외에도 함안이 낳은 많은 학자가 있고. 그들이 남긴 저서는 수없이 많다. 이 분들의 학문과 사상을 연구하여 널리 알리면 함안은 앞으로 학문의 고장으로서 전국적으로 인식이 될 것이고. 함안 사람들은 학문의 고장에서 산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함안을 알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깊은 바다 속에 구슬이 있으면 목숨을 걸고 캐려고 하지 버려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구슬보다 더 소중한 훌륭한 선현(先賢)들의 학문과 사상이 자기 주변에 있는데도. 이를 버려 두고 현대화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바다에 구슬을 버려 두는 일보다 더 어리석은 것이다.
    (*. 滄 : 너른 바다. 창. *. 海 : 바다. 해. *. 遺 : 버릴. 유. 남길. 유. *. 珠 : 구슬. 주)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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