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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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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마산 9경'류와 도시이미지 / 우무석

  • 기사입력 : 2007-04-13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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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가 `산업'으로 여겨지면서 나타난 변화 가운데 하나가 도시를 `이미지'로 바꾸어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는 한 도시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서서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에 대한 추구와 새로움을 발견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이제 거의 모든 도시들에서 지역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운동은 일종의 슬로건이 되었으며, 가장 중요한 문화정책의 목표가 된 듯도 하다. 지역사회의 집단적 정체성과 도시상징을 세우겠다는 운동은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되고 있다.
     
    예를 들면 도시의 관문에다 주변경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거나, 모든 도시들이 천혜의 자연과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앞다투어 자랑하면서 9경과 10경과 12경의 이미지로 경쟁하거나 `영 시티(Young City)', `드림 베이(Dream Bay)'라든가 하는 상징적 구호를 치켜드는 것 등이다.
     
    도시 속에 담겨진 이미지를 새롭게 조직하고 홍보하여 판매하려는 장소판매(selling place)의 전략과 도시정체성(CI:City Identity)을 차별화하려는 것은 상징정치의 일환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한국의 도시들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운동이 됐다. 유행에 따르다 보니 도시이미지를 구축하겠다는 대단히 진보적이고 미래지향적 담론이 지극히 천편일률적이 되어 버렸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도 예외 아니게 천혜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곳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산 9경'을 만들어서 주요한 곳마다 큼지막한 풍경사진을 내붙여 놓고 있다. `마산 9경'류 따위의 전통은 아마도 북송의 문인화가 송적이 그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거쳐 주자의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에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소상이란 중국 절강성의 동정호로 흘러들어가는 소수와 상수가 합류하는 지역을 가리키며 그 곳의 승경을 여덟 폭의 그림으로 그린 것이 소상팔경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고려시대에 전해져 조선 말기까지 수백년에 걸쳐 줄곧 유행하던 시화풍의 하나이다.
     
    `소상팔경도'의 8경은 계절로는 봄, 가을, 겨울을 표현하며 여름은 표현하지 않았다. 시들의 내용도 한결같이 가을을 노래하며 아침의 밝고 맑은 햇살 아래의 승경, 저녁놀이 지는 황혼 무렵의 승경, 밤에 비치는 밝거나 스산한 달빛 아래서의 승경 등이 주된 배경이 된다.
     
    `소상팔경도' 속에 표현된 내용과 구성요소는 자연의 절묘한 조화인 밤비, 저녁에 내리는 눈, 차가운 가을달, 연무, 아지랑이 등과 인공이 가미된 마을과 성, 절, 정자 등을 소재로 자연 속에서의 인간 삶의 모습을 승화시킨 것이다. 또한 `무이구곡도'는 중국 복건성 무이산 계곡의 아홉 구비 경치를 이름짓고 이것을 그린 산수화인데 주자가 무이정사를 짓고 `무이구곡도가'를 썼다. 자연묘사를 통해 성리학을 공부하는 단계적 과정을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무이구곡도'들은 철학적이며 사변적 성격을 가진 화풍으로 그려졌다.
     
    우리나라의 공간에서도 조선조 사대부들이 무이구곡을 설정하여 경영했던 곳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가까운 땅으로는 경북 영주의 죽계구곡은 주세붕 선생이 경영했고 안동의 도산십이곡은 이황 선생이 경영하던 곳이 실재한다.
     
    `소상팔경도'와 `무이구곡도'들은 공간을 배경으로 해서 화(畵)로 그려지고 시(詩)로 읊어져 왔고 이것을 통해 우리의 전통 산수관과 당대 문화사의 한 국면을 알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땅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생활 속에서의 주변세계를, 그 시대의  인식체계를 심미적으로 지각시키는 것이 소위 `9경류'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산 9경'은 `삶의 질'을 담보하는 생활공간으로서의 의미는 획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무엇인가가 빠진 허전함이 남아 만족스럽지 않다.
     
    어떤 연유로 9곳의 배경공간이 만들어져 경영되어야 하는지, 도시이미지는 지역의 문화적 현실 속에서 어떻게 뒷받침되고 있는지, 시민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공감적 유대를 발견할 것인지는 설명해 주고 있지 않다. 다만 시각적 모델의 전제(專制)만 나열해 두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된 연유는 무엇 때문일까?

    우무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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