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6월 26일 (수)
전체메뉴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183) 간명범의(干名犯義)

  • 기사입력 : 2007-04-03 09:41:00
  •   
  • 이름을 구하려고 의리를 저버리다

      옛날의 선비들은 벼슬길의 진퇴(進退)를 분명히 했는데. 이를 출처대절(出處大節)이라고 했다. ‘출(出)’은 ‘벼슬에 나가는 것’이고. ‘처(處)’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이다. 벼슬할 만한 자질과 역량을 갖추고서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지조를 지키는 선비를 ‘처사(處士)’라고 했다. 벼슬할 만할 때 벼슬하고.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는 것이다. 벼슬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자기가 갈 만할 데는 가고. 가서는 안 될 데는 가지 않아야 하고. 참여할 만한 모임에는 들고 참여해서는 안될 모임에는 들지 않는 것이 개인적으로 출처(出處)를 올바르게 하는 것이다.

      조선(朝鮮) 중기에 이희보(李希輔)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책 만 권을 읽은 대학자였으나. 연산군(燕山君)에게 아첨하는 시를 지어 특별승진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얼마 뒤 연산군이 쫓겨나자. 그는 여러 관원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는 사람으로 전락하여 한평생 불우하게 지내고 말았다.

      얼마 전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씨는 지금까지는 상당히 처신을 잘하여 많은 국민들이 좋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운수도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했으면서도. 자기 출세만을 위해서 사회의식 없이 공부만 하지 않고. 독재정권에 격렬하게 항거하는 시위도 많이 해 보고. 불쌍한 노동자들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위장취업(僞裝就業)도 해 봤다. 그러다가 또 유학을 가서 공부를 계속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유수한 대학의 교수로서 후진 양성에 정력을 쏟았다.

      그러나 시위를 주도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노력은 않으면서 나서서 이름 얻기는 좋아하기 때문에 마치 일확천금(一攫千金)을 노리는 노름꾼 같은 속성이 있다. 대학생들 가운데 학생 간부를 하거나 시위에 열심인 학생들은 수업에 많이 빠진다. 그러니까 성적이 좋을 리 없고. 그 결과 학점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들 대부분은 자기들이 부르짖는 정의(正義)와는 정반대로 비밀리에 교수들에게 찾아다니며 학점을 구걸한다. 시위도 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면 되겠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시위를 많이 하던 학생들이 그 언변과 선동가적 기질을 발휘하여 나중에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하고. 또 집권당에 속하면 장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혼자서 계속 공부해야 하는 교수는 되기 어렵다. 그러나 시위를 많이 하던 손학규씨는 아주 예외적으로 마음을 독실하게 먹었던지 공부에 침잠(沈潛)하여 전력을 쏟았던 모양이다.

      정치에 입문하여서도 14년 동안 국회의원과 장관. 민선 경기도 지사 등을 지내면서 자기 관리를 잘하여. 길지 않은 기간에 대통령후보로 거론될 정도까지 위상이 높아졌다.

      그러나 결국은 그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시위꾼의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자신의 대통성 당선 가능성을 위해서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다른 당으로 가든지 새로운 당을 만들든지 하는 것은 민주주의 나라에서 개인의 자유에 속하니까. 못마땅해도 국민들이 어쩔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아 왔고 그 토양 위에서 성장했던 한나라당에 대해서 마지막 나가면서 그렇게 무지막지한 욕설을 퍼부어서야 되겠는가? 욕을 하려면 한나라당이 더 엉망이던 이전에 했어야지. 상당히 좋아진 지금에 와서 왜 욕을 하는가? 자신에게 대통령후보를 안겨주면 그가 어떤 말을 했을까? 그동안 자신이 한 말. “탈당 안 한다”. “끝까지 한나라당을 지키겠다”. “내 자신이 바로 한나라당이다” 등등의 말은 누가 한 말인가? 우리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언행(言行)이 일치 안 되는 이런 작태를 보여도 될 것인가? 자신이 대통령후보가 될 수 있으면 좋은 당이라 했을 것인데. 자신이 대통령후보가 될 가능성이 없으니. 버리고 가면서 욕설을 퍼붓는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이러고서도 이전의 한국대통령들을 싸잡아 욕할 자격이 있는가? 자기를 당선시켜 준 민주당을 버리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어 간 노대통령을 욕할 자격이 있는가?

      지금까지 손학규씨에 대한 비교적 괜찮았던 국민의 인상은. 이번의 처사로 말미암아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자기 이익이나 이름내는 일이라면 못할 일이 없는 사람을 누가 대통령으로 선출하겠는가? (*. 干 : 구할 간. 방패. *. 名 : 이름 명. *. 범 : 범할 범. *. 義 : 옳을 의)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