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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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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182) 진가난변(眞假難辨)

  • 기사입력 : 2007-03-27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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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렵다

      우리 나라 텔레비전에 ‘진품명품(眞品名品)’이라는 프로가 등장한 것이 근 10년쯤 되어가는 것 같다. 서양의 여러 나라의 사정은 필자가 모르지만. 중국이나 일본에도 이런 프로가 있는데. 그 진행방법이 우리 나라 방송과 거의 비슷한 것을 보았다.

      이 프로는 일반대중들에게 문화재에 관심을 갖게 하는 점에 있어 충분히 그 역할을 했다. 요즈음은 사람들이 모이면 지나간 진품명품 프로에 등장했던 각종 문화재나 골동품 같은 것을 가지고 화제를 삼는 경우가 많다. 가끔씩 이야기하다가 서로 승강이를 벌이기도 한다.

      프로에 등장하여 감정하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감정하는 안목이 대단히 높지만. 가끔 실수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제한된 시간에 감정을 해내야 하는 급박함 때문이기도 하고. 물건이 원래의 위치에 있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나오니 유래를 알 수 없어 감정이 곤란한 경우도 있다. 시간적으로 몇천 년 공간적으로 한반도 전역은 물론이고 해외로부터 들어온 문화재까지 감정해야 하니. 감정위원들은 정신적인 압박을 많이 받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다른 분야는 필자가 잘 모르니까 이야기할 수 없고. 서예(書藝) 분야에 대해서 참고로 조금 이야기해 볼까 한다.
      필적(筆跡)은 원래 사람마다 다르지만. 간혹 스승이나 제자의 글씨가 닮은 경우가 있고. 부자간에도 닮은 경우도 있다. 또 후세 사람이 옛날 어떤 유명한 사람의 글씨를 본떠서 자기의 필체(筆體)로 삼는 경우도 있다.

      옛날 분들 가운데서 남아 있는 필적이 많은 경우에는 서로 대조를 해보면 그 분의 필적을 금방 감정해 낼 수가 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이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선생 같은 경우이다. 그러나 퇴계나 추사의 경우도 그 글씨를 본떠서 쓰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두 분의 글씨가 아닌데. 두 분의 글씨로 판정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남아 있는 필적이 한 점밖에 안 되거나 몇 점 안 될 경우에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감정하기가 정말 어렵다. 그럴 경우 그 종가(宗家)라든지 제자의 집에서 그동안 전해 오게 된 유래를 알면 감정할 수 있지만. 여기저기 나도는 경우 정말 곤란하다.

      몇해 전 어떤 사람이. 퇴계선생과 남명(南冥) 조식(曺植)선생 등 그 당시 여러 선현들의 시를 베껴놓은 필첩(筆帖)을 들고 ‘진품명품’에 나와서 감정을 의뢰한 적이 있었는데. 감정하는 분이 진품으로 판정한 경우가 있었다. 또 추사선생의 작품을 감정의뢰했을 때. 추사의 진품이 분명히 맞는데도 아니라고 한 적도 있었다.

      약간의 의심이라도 있으면. “두고 봅시다. 다음에 더 철저하게 감정하여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해야지. 만물박사처럼 나오는 작품마다 단 몇 시간만에 척척 감정하다 보면. 실수가 없을 수 없다. 중국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에 소장되어 있는 ‘육체천자문(六體千字文)’이라는 작품은 900여년 동안 원(元)나라 명필 조맹부의 친필로 전해져 왔지만 최근에 와서 가짜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가짜가 진짜처럼 되는 경우 거래하는 사람들끼리 금전적인 피해만 입으면 되지만. 진짜를 가짜라고 잘못 판정하면 그 소장자가 크게 실망한 나머지 그 작품을 천대하거나 버리게 되면 귀중한 문화재 한 점을 완전히 잃게 된다. 가짜를 진짜라고 감정했다가 나중에 경제적 손실을 본 사람으로부터 폭력을 당한 감정가도 있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서예사(書藝史)를 전공하는 어떤 교수는 자신이 한문에 약하고 초서도 잘 모르니까 누가 감정을 의뢰해 오면 대부분 진품이 아니라고 감정해서 돌려보낸다. 그러면 자신은 책임이 없고 안전하지만. 많은 귀중한 문화재가 천대를 받다가 없어져 버리게 될 수가 있다. 좀더 신중히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옛날부터 이런 말이 있다. 다 어렵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그림이 알아보기가 제일 쉽고. 그 다음으로 어려운 것이 사군자(四君子)이고. 그 다음이 글씨고. 그 다음이 시이고. 그 다음이 문장이고. 그 다음이 책이고. 제일 알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라고 했다.
      (*. 眞 : 참 진. *. 假 : 거짓 가. *. 難 : 어려울 난. *. 辨 : 분변할 변)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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