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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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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사본구말(捨本求末)

  • 기사입력 : 2007-03-20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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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본은 버려두고 말단적인 것만 구한다

      조선(朝鮮) 숙종(肅宗) 임금 때 김학성(金鶴聲)이란 분이 있었는데.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냈다. 이 분은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가 남의 삯바느질을 해서 김학성과 그 아우를 공부시키고 있었다. 그 어머니는 열 손가락이 다 닳을 정도로 밤낮 없이 바느질을 해야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는 지경이었는데. 거기다가 두 아들까지 일을 안 시키고 공부를 시키려고 하니 얼마나 살림이 쪼들렸겠는가?

      비 오는 어느 날. 두 아들은 서당(書堂)에 가고 혼자 바느질을 하고 있으니. 낙숫물 소리가 들려왔는데. 유심히 들어보니 어디서 쇳소리 같은 것이 울리는 것 같았다. 이상하다 싶어 그 쪽으로 가봤더니 분명히 낙숫물 떨어지는 밑에서 쇠 소리가 나고 있었다. 호미로 살며시 후벼 파 봤더니. 그 아래 큰 가마솥이 있고. 솥에는 은전(銀錢)이 가득 들어 있었다. 아마도 그 이전에 살던 집 주인이 무슨 사연이 있어 돈을 묻어둔 것 같았다.

      너무나 뜻밖이었다. 이 여인에게 지금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재물인데. 자기가 평생 삯바느질해도 벌 수 없는 정도의 재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러나 얼마 뒤 그 여인은 돈이 담긴 그 솥에서 한 푼도 꺼내지 않고. 호미로 다시 흙을 끌어와 묻어 버렸다. 그 얼마 뒤 김학성의 어머니는 친정 오라버니에게 부탁하여 그 집을 팔고. 다른 집을 구해서 이사를 했다. 그 돈에 관해서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두 아들이 장성하였고. 맏이인 김학성은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가게 되었다. 고생한 보람으로 이제 가정 형편도 조금 나아지게 되었다. 어느 날 오라버니와 두 아들이 모인 자리에서 비로소 그 돈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 때 만약 내가 그 돈을 탐내었더라면. 자식들을 바르게 교육할 수 없었을 것이요. 나는 재물을 얻은 것보다 자식들이 올바른 사람이 된 것에 더 큰 보람을 느낍니다. 내 손으로 번 바느질삯이 노력하지 않고 얻은 만 냥의 돈보다 더 값지지 않겠습니까?”라고 숙연(肅然)하게 말하니. 그 오라버니와 두 아들이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학성의 어머니는 크게 배우거나 지위가 있는 여인도 아니었지만. 올바른 판단을 하였다. 아무런 땀을 흘리지 않은 채 그 재물을 차지했더라면 잠시는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면서 지낼 수 있었지마는. 결국 두 아들을 불성실한 인간으로 만들고 말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올바른 판단이 두 아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운 것이다.

      70년대 이후 도시 근교 개발지역의 주민들 가운데는 토지 등을 보상받아 갑자기 큰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다. 대개 그들은 도시로 나가 큰 건물을 짓고 목욕탕을 짓고 좋은 집과 좋은 차를 사고 비싼 옷을 사 입고. 고급 요리를 먹으며 호화롭게 생활하였다. 그 인근의 개발지역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을 매우 부러워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갑자기 부자가 된 그들은 대부분 재산을 다 날렸고. 사람마저 타락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자녀들도 올바른 길로 간 사람은 별로 없었다. 토지 보상을 못 받고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더 나았다. 노력하지 않고 얻은 재물이 사람과 집안을 망친 것이다.

      자기 손으로 땀 흘려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한데도. 많은 사람들은 일확천금(一攫千金). 횡재(橫財) 같은 것을 노리고 있다. 부동산회사나 증권회사 등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일확천금의 망상을 갖도록 조장을 하고 있다. 정부에서 실시하는 복권제도 등은 더 심한 경우이다. 성실하게 근면하게 자기 일을 착실하게 해 가는 사람을 비웃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재산을 위해서는 형제도 친척도 친구도 저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세상은 날로 삭막해져 간다. 재물은 물론 필요하지만 재물보다는 사람이 먼저다.

      윤리도덕. 인간다운 삶. 인간미. 인격 등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재산 모으고 재물 늘리기에 모두가 혈안이 되어 있다. 정신적인 삶을 무시하고 물질적인 욕구만을 찾는다면. 아무리 국민소득이 높아져도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사람이 근본이고 재물은 지엽적인 것이다. 그런데도 ‘근본적인 것을 버려 두고 지엽적인 것만 추구하고 있으니[捨本求末]. 정상적인 사회는 아닌 것이다.
    (*. 捨 : 버릴 사. *. 本 : 근본 본. *. 求 : 구할 구. *. 末 : 끝 말)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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