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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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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토해낸다

  • 기사입력 : 2007-02-20 0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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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朝鮮) 선조(宣祖) 때의 문학가인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시조에 이런 작품이 있다. “나무도 병이 드니 정자라고 쉴 이 없다. 호화히 섰을 때는 올 이 갈 이 다 쉬더니. 잎 지고 가지 꺾인 후엔 새도 아니 앉누나.”

      송강 자신이 정승의 지위에 있을 때는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대문 앞이 마치 시장 같았는데. 선조의 미움을 받아 귀양살이하게 되니.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는데. 이를 병든 나무에 비유하여 절묘하게 표현하였다.

      공자(孔子)의 언행록인 ‘논어(論語)’에. “한 해의 기후가 추워진 뒤에라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들보다 늦게까지 푸르러다는 것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잘 나갈 때는. 친구들도 많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친절을 베푸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자신이 어려울 때는 아는 체하는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도. 도와주려는 사람도 다 사라져버린다. 이런 것이 세속의 인심이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요 동지인 것이다.

      김영삼 전대통령이 대통령후보가 되고 나서부터는 현직 대통령인 노태우씨를 무시하고 핍박했다. 그것이 전례가 되어.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는 실제로 김영삼씨 덕분에 정계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면서도 쟁쟁한 사람들을 물리치고 대통령후보로 선정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김영삼 현직대통령을 당에서 나가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였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신의(信義)를 저버리고 태도를 표변(豹變)한 사례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을 당선시켜 준 민주당을 하루 아침에 버리고 열린우리당을 새로 결성하자. 많은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뚜렷한 명분도 없이 민주당을 버리고 열린우리당으로 모여들었다.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힘이 있기에. 잘 보이면 총리나 장관으로 발탁될 수도 있고 또 여러 가지 이득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덕분에 국회의원 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많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지금 노 대통령의 인기가 땅에 떨어지고 레임덕 시기에 들어서자. 대통령이 탈당하지 말라고 말려도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탈당을 계속하고 있다. 뚜렷한 명분이나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탈당에 앞장선 사람 가운데는 노 대통령 때문에 국회의원 된 사람과 노 대통령이 신임하여 장관을 시켜주고 당 운영을 맡겼던 사람들도 많다. 왜 이들이 탈당을 서두르는가? 노 대통령과 친하다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자기 집에 먹을 것이 없으면 당장 먹이를 주는 사람을 따라간다. 그러나 개는 다른 사람이 먹이를 주어도 주인이 아니면 따라가지 않는다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신의(信義)를 지키는 데 있다. 국회의원들은 자칭 타칭 ‘지도자급 인사’라고 한다. 지도자급 인사라는 사람들이 신의를 버리고 이익에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모였다 흩어졌다 하면. 이 나라 젊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겠는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런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지도자라고 나서서 되겠는가?
      (*. 甘 : 달 감. *. 呑 : 삼킬 탄. *. 苦 : 쓸 고. *. 吐 : 토할 토)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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