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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묻지마 개방' 역사의 교훈에 반한다-서익진(경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 기사입력 : 2007-01-26 0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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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FTA를 추진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한마디로 ‘묻지마 개방’으로 요약될 수 있다. 개방은 무조건 좋은 것이므로 그 수준이 높을수록. 그 속도가 빠를수록. 그 개방의 범위가 넓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한미FTA 반대자들에게 ‘그럼 쇄국을 하자는 것이냐’라고 반문한다든지. 국민들에게 ‘FTA는 대세다’. ‘한미FTA가 결렬되면 큰일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묻지마 개방론’의 단적인 표현들이다. ‘묻지마 개방론’은 개방에는 여러 단계가 있으며 선택 가능한 방식이 다양하고 개방의 속도와 범위는 조절 가능하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한다. 극단적으로는 누구와 어떤 식으로 하는 개방이든 그것이 개방이라면 무조건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한미FTA 반대자들은 결코 개방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성격. 대상.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강조한다.

    ‘묻지마 개방론’이 가진 숱한 문제점들이 지적되어 왔지만 그 몰역사성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한강의 기적은 개방 없이는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라는 인식은 경제학계의 통념을 넘어 대중의 고정관념으로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그동안 한국이 실제로 시행했던 개방의 역사와 그것이 주는 교훈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 아니라면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에 의한 왜곡의 산물이다. ‘한강의 기적’을 가져다준 결정적인 요인은 ‘수출입국’ 정책이 아니라 ‘수입통제’ 정책이다. 수입통제 정책이 성공적인 공업화를 가져다줄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단순한 통제가 아니라 한편으로는 품목별로 선별적인 통제(개방)와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적으로 가변적인 통제(개방)였기 때문이다. 선별적 통제란 특정의 시기에 있어 경쟁력 있는 품목은 개방하되 경쟁력 없는 품목은 보호·지원한다는 것이고. 가변적 통제란 시간과 더불어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개방(통제) 리스트를 바꾸어 나간다는 것이다. 이는 독일의 경제사학자 F. 리스트의 유명한 ‘유치산업보호론’의 한국적 적용에 다름 아니다.

    1960~1970년대의 ‘개발독재’ 시대에 수출지상주의와 이를 뒷받침하는 수입통제 정책을 바탕으로 국내 제조업 기반의 구축이라는 공업화 과정은 일단락된다. 이 시기에 무역정책과 통화금융정책 등 여타의 경제정책들은 오직 공업화라는 산업정책에 봉사하는 방식으로 운용되었다. 이러한 정책혼합이 없었더라면 공업화에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1970년대 말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이렇게 구축된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무역정책의 중심은 통제에서 개방으로 이동해간다. 그러나 1980년대를 통틀어 개방의 기조는 소극적이고 방어적 성격을 띠었다. 요컨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공업화 성공신화는 결코 ‘묻지마 개방’ 덕택이 아니며 오히려 ‘현명한 개방’의 소산이었던 것이다.

    반면. 1992년 김영삼 정부의 출범은 ‘세계화’ 담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대외경제정책의 기조를 ‘전략적 개방’으로 바꾼다. 사실은 부문별한 대책 없는 개방이 시행되고. 이는 1997년의 이른바 ‘IMF 경제위기’로 귀착되었다. 위기를 수습해야 하는 과업을 떠맡은 김대중 정부는 개방. 민영화. 규제철폐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전략을 시행했다. 막대한 대외채무와 IMF 긴급융자에 발목잡힌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1990년대 초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온 개방지상주의와 시장만능주의 정책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경제에 족쇄를 채우고 있는 고용 불안정. 임금분배율 하락. 경기의 장기침체. 실업자 양산 및 다양한 유형의 양극화 현상의 배경을 제공했다. ‘묻지마 개방론’은 이러한 무분별한 개방 전략의 시행이 주는 반면교사로서의 교훈을 무시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이처럼 현명한 개방과 무분별한 개방의 두 경험이 주는 교훈을 곰곰이 되새길 줄 알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경제 규모와 발전단계가 달라진 만큼 개방의 활용방식도 달라져야 함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묻지마 개방론’을 두둔하는 역사적 사례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명백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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