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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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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사법개혁, 또 물 건너가나 - 최영규(경남대학교 법학부 교수)

  • 기사입력 : 2006-12-08 1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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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두어야 될 벼가 들판에 가득한데 머슴들이 낫과 지게를 엎어놓은 채 저희들끼리 투전이나 하다가 심심하면 패싸움이나 벌이고 있다면 주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작대기를 휘둘러 내쫓을 것이다. 그런데도 주인이 이런 머슴들을 쫓아내기는커녕 슬슬 눈치만 보면서 때가 되면 꼬박꼬박 새경을 주고 있다면 주인을 탓해야 할까 머슴을 탓해야 할까.

    어디 그런 일이 있을 리 있겠냐고 손사래를 칠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바로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머슴들은 국회의원이고 주인은 물론 국민이다.

    보도에 의하면 지난 11월27일 현재 국회에는 2천986개의 법률안이 계류된 채 낮잠을 자고 있다고 한다. 11월30일 비정규직 관련 3개 법안을 포함하여 34개 법안이 통과되었으니 아직도 2천952개 법안이 남아 있을 것이다. 한 일간지는 “기네스북감”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국회가 할 일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 법률을 제정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다른 모든 일은 그 다음이다. 그래서 국회를 입법부라고 부른다. 그런데도 국회가 몇년째 수많은 법안을 서랍 속에 넣어둔 채 정쟁에만 골몰하고 있다면. 이야말로 다 익은 벼를 나 몰라라 하고 편갈라 노름이나 하는 머슴과 뭐가 다른가.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여러가지 댈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대든 국회가 3천건에 가까운 법안을 묶어두고 있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입법에 있는 이상 이토록 많은 법률안의 처리를 미루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장기 미결 법안 중에는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제출한 사법개혁 관련 법안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사개추위가 제출한 사법개혁관련 25개 법안 가운데 법관징계법 등 비교적 사소한 6개 법안만 국회를 통과하고 나머지 19개 법안은 언제 처리될지 감도 잡을 수 없다.

    계류중인 사법개혁법안들은 대법원 소속 사법개혁위원회에서 1년 이상 다시 대통령 소속 사개추위에서 2년 등 짧게 잡아도 3년간에 걸쳐 법조와 학계를 포함한 각계 대표들이 모여 어렵고 고통스런 과정을 거쳐 합의에 도달한 결과물이다. 역사적으로는 김영삼 정부 하 사법제도발전위원회의 사법개혁 6대 법안(1994년)과 세계화추진위원회의 ‘법률 서비스 및 법학교육의 세계화 방안’(1995년). 김대중 정부 하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의 논의(1999년)와 새교육공동체위원회의 법학전문대학원 도입안(2000년) 등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감안하면 길게는 13년에 걸친 숙고의 결실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세부적 내용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오랜 산고를 이겨내고 마침내 도달한 국민적 합의가 구체화된 것이 바로 국회에 제출된 사법개혁관련 법안들이다. 이번에도 정당 간의 힘겨루기에 밀려 사법개혁법안들이 다시 무산된다면. 국민적 여망을 담은 사법개혁은 다음 정권으로 미뤄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리고 그때 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앞으로 몇년이 더 걸릴지. 아니 또다시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이나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보다 훨씬 늦게 논의를 시작한 일본이 차근차근 입법조치를 통해 사법개혁을 실행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뜻 있는 사람들은 국회를 향하여 눈물로 호소한다. 태업을 중단하고 본연의 임무로 돌아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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