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애 낳으라고 윽박지르는 사회
- 기사입력 : 2005-09-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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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애를 안낳는 거야. 장차 일할 사람은 있어야 할 것 아냐. 인구가 자꾸 줄면 연금납입액만 올라가. 또 노인들은 누가 부양할 거야. 중국을 봐. 인구가 13억이나 되니 세계경제를 주름잡잖아. 일본도 1억2천만명이나 돼. 이런 틈바구니에서 5천만명도 안되는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남겠어. 국가적 재앙이 곧 닥칠 수도 있단 말이야.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기는 모두 47만6천52명으로 1970년 관련통계가 작성된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년도에 비해 1만7천여명이나 줄어들었다. 여성 1명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는 평균 자녀수인 합계출산율도 1.16명으로 떨어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정부와 종교계. 또 언론이 애를 더 낳아야 한다고 소리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보건복지부는 “만혼이 저출산의 한 원인”이라며 미혼 직원들의 미팅을 주선하고 있고. 한 연구단체는 합계출산율이 1.2명으로 지속될 경우 950년 후에는 단 한 명도 남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자료까지 내놓았다. 200여년 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가 식량위기를 부르면서 빈곤과 죄악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예언한 토마스 맬서스의 ‘인구론’과. ‘인구 억제를 위해 성적 난행을 막고 결혼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했던 ‘인구론 2판’을 뒤집어 읽는 것과 똑같다.저출산이 왜 위기인가. 이에 대한 근거로는 노동력 감소와 경제성장률의 둔화가 제시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저출산·고령화가 지속되면 현재 5% 안팎인 잠재성장률이 2020년대에는 2%대. 2030년대에는 1%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조금만 비틀어 생각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 실업률은 3.9%로 OECD국가들 가운데 낮은 축에 낀다. 그러나 한창 일할 나이인 청년층의 실업률은 그 두 배인 8.4%였다. 더욱이 출산이나 육아 등으로 노동시장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전업주부와 구직 단념자 등 비경제활동인구를 포함한 생산가능인구 대비 취업자를 나타내는 고용률은 63.6%로 OECD 5개 그룹 4번째 그룹에 속한다. 상위그룹과는 10%P 이상 차이가 난다. 여성 고용률의 경우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25~54세 여성 고용률은 겨우 58%로 일본(65%). 미국(71%). 독일(74.6%)과 비교가 안된다. 또 있다. 대졸 이상 여성의 고용률은 멕시코 다음으로 낮아 OECD 평균과도 22%P나 차이가 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선진국 수준의 고용률을 유지하려면 1천1백만명이 넘는 비경제활동인구 중 3백만명을 일터로 불러내야 한다고 분석했다. 국가 차원에서 인적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면서. 저출산으로 일할 사람이 줄어든다고 난리법석이다. 또 지금과 같은 저출산이 지속되면 20년 뒤에는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면서 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는데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라고도 한다. 물론 한 명의 젊은이가 그의 부모. 조부모를 모두 부양해야 하는 그런 상황도 가정할 수 있다.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러나 부양해야 할 젊은이가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지금도 10명의 청년 중 1명이 놀고 있다.
인구가 곧 국력이라는 것도 얼른 가슴에 와닿는 게 아니다. 올해 우리나라 인구는 4천800만여명으로 세계 25위. 인구밀도로 따지면 ㎢당 485명으로 방글라데시. 대만에 이어 세번째다. 좁은 국토면적를 고려하면 지금도 과밀인구라고 하는 게 맞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표어가 나붙던 60년대에는 좁은 땅덩어리에 왜 그렇게 많이 낳느냐고 면박하던 정부였다. 한국에 맞는 인구이론이 있긴 한지 의심스럽다.
어쨌든 저출산이 위기라는 것에 일단 동의해보자. 그러나 기업들이 싼 임금을 찾아 중국이나 동남아로 계속 공장을 옮기고. 삼팔선이나 사오정이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고. 노동현장에서 여성의 소외가 지속되는 한 출산은 여전히 ‘부담스런 일’로 남는다. 애국심에 호소하고. 또 윽박지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서영훈(정치부 차장)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