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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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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애 낳으라고 윽박지르는 사회

  • 기사입력 : 2005-09-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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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애를 안낳는 거야. 장차 일할 사람은 있어야 할 것 아냐. 인구가 자꾸 줄면 연금납입액만 올라가. 또 노인들은 누가 부양할 거야. 중국을 봐. 인구가 13억이나 되니 세계경제를 주름잡잖아. 일본도 1억2천만명이나 돼. 이런 틈바구니에서 5천만명도 안되는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남겠어. 국가적 재앙이 곧 닥칠 수도 있단 말이야.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기는 모두 47만6천52명으로 1970년 관련통계가 작성된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년도에 비해 1만7천여명이나 줄어들었다. 여성 1명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는 평균 자녀수인 합계출산율도 1.16명으로 떨어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정부와 종교계. 또 언론이 애를 더 낳아야 한다고 소리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보건복지부는 “만혼이 저출산의 한 원인”이라며 미혼 직원들의 미팅을 주선하고 있고. 한 연구단체는 합계출산율이 1.2명으로 지속될 경우 950년 후에는 단 한 명도 남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자료까지 내놓았다. 200여년 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가 식량위기를 부르면서 빈곤과 죄악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예언한 토마스 맬서스의 ‘인구론’과. ‘인구 억제를 위해 성적 난행을 막고 결혼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했던 ‘인구론 2판’을 뒤집어 읽는 것과 똑같다.

      저출산이 왜 위기인가. 이에 대한 근거로는 노동력 감소와 경제성장률의 둔화가 제시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저출산·고령화가 지속되면 현재 5% 안팎인 잠재성장률이 2020년대에는 2%대. 2030년대에는 1%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조금만 비틀어 생각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 실업률은 3.9%로 OECD국가들 가운데 낮은 축에 낀다. 그러나 한창 일할 나이인 청년층의 실업률은 그 두 배인 8.4%였다. 더욱이 출산이나 육아 등으로 노동시장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전업주부와 구직 단념자 등 비경제활동인구를 포함한 생산가능인구 대비 취업자를 나타내는 고용률은 63.6%로 OECD 5개 그룹 4번째 그룹에 속한다. 상위그룹과는 10%P 이상 차이가 난다. 여성 고용률의 경우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25~54세 여성 고용률은 겨우 58%로 일본(65%). 미국(71%). 독일(74.6%)과 비교가 안된다. 또 있다. 대졸 이상 여성의 고용률은 멕시코 다음으로 낮아 OECD 평균과도 22%P나 차이가 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선진국 수준의 고용률을 유지하려면 1천1백만명이 넘는 비경제활동인구 중 3백만명을 일터로 불러내야 한다고 분석했다. 국가 차원에서 인적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면서. 저출산으로 일할 사람이 줄어든다고 난리법석이다. 또 지금과 같은 저출산이 지속되면 20년 뒤에는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면서 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는데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라고도 한다. 물론 한 명의 젊은이가 그의 부모. 조부모를 모두 부양해야 하는 그런 상황도 가정할 수 있다.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러나 부양해야 할 젊은이가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지금도 10명의 청년 중 1명이 놀고 있다.

      인구가 곧 국력이라는 것도 얼른 가슴에 와닿는 게 아니다. 올해 우리나라 인구는 4천800만여명으로 세계 25위. 인구밀도로 따지면 ㎢당 485명으로 방글라데시. 대만에 이어 세번째다. 좁은 국토면적를 고려하면 지금도 과밀인구라고 하는 게 맞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표어가 나붙던 60년대에는 좁은 땅덩어리에 왜 그렇게 많이 낳느냐고 면박하던 정부였다. 한국에 맞는 인구이론이 있긴 한지 의심스럽다.

      어쨌든 저출산이 위기라는 것에 일단 동의해보자. 그러나 기업들이 싼 임금을 찾아 중국이나 동남아로 계속 공장을 옮기고. 삼팔선이나 사오정이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고. 노동현장에서 여성의 소외가 지속되는 한 출산은 여전히 ‘부담스런 일’로 남는다. 애국심에 호소하고. 또 윽박지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서영훈(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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