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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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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은퇴없는 사회' 만들기

  • 기사입력 : 2005-09-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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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호 수석논설위원

      나이 먹는게 두려운 사회다. 누군가 “내 사전에 은퇴란 없다”고 말한다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느냐는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은퇴없는 인생 후반기의 멋진 설계는 개인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되고 인프라가 갖춰진다면 더 좋다. 종전의 은퇴란 젊어 뼈빠지게 일한 다음. 즐기는 시기. 벌어 놓은 것 우려먹는 시기였다. 하지만 여행도 한때일 뿐. 아침 저녁 약수터나 찾고 바둑판이나 기웃거리는 사회의 언저리에 밀려난 생활이다. 지난 세월 이야기도 며칠 지나면 바닥이 난다. 재탕 삼탕으로 시간 때우는게 고작이다.

      직장생활로 인생 전반기를 보낸 40. 50대라면 ‘경쟁과 효율’에 떠밀려 지금쯤 일자리를 잃었거나 잠재적 실업상태일 게다. 이 시대 ‘정년’이란 운좋게 버틴 일부를 제외하곤 박물관에 박제돼 있거나 사전에나 있는 단어가 아닌가. 종래 노년 대책의 하나였던 자식의 경로사상도 작금엔 기대 밖이다. 사회보장제도란 것도 부실하기 짝이 없고 황우석교수 덕(?)에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더 남을 가능성이 높은 판에 믿을 곳이라곤 자기 자신밖에 없다. 60대도 그렇다. 은퇴를 즐길 나이가 아니다. 흔히들 현재가 힘들고 미래가 두렵고 과거가 그리워지면 노년기에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와 자신이 정한 정년이나 은퇴는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남은 인생을 여분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은퇴 시기를 한껏 늦춰 보자.

      돈. 일자리. 건강의 3박자를 다 갖춘 복받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적 여건은 오십보 백보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면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 그리고 철저히 어디에 무엇을 심을 것인지 인생 2모작을 대비하자. 열심히 살아온 당신이라면 풍년농사를 구가할 수 있다. 눈높이를 조절해 컴퓨터·외국어 공부나 자격증에 도전해도 좋고. 지금껏 해온 일을 연장할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어릴 때 사장이 꿈이였다면 창업도 못할 게 뭐 있겠는가. 가고 싶었던 길로 나서는 것도 늦지 않다. 실패하더라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남은 인생이 창창하지 않은가.

      물론 은퇴 없는 작업은 개인만으론 힘들다. 중앙과 지방정부도 ‘늙어 가는 사회’를 막기 위해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경로당이나 지을 게 아니라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늘리는 게 우선이다. 지금같이 시한을 정해 허드렛일을 시켜놓고 푼돈이나 주는 노인대책으론 안된다. 일례로 도심 인근에 집단농장이나 양봉단지도 좋고. 휴경지를 개간해 작물을 재배토록 할 수도 있다. 여기에다 통근버스가 제공되고 방갈로가 있다면. 늘그막에 건강 챙기고 수입 챙기며 일과 여가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노인건강센터의 지압실이나 물리치료실이 대수겠는가. 노인 사정은 노인이 더 잘안다고 건강한 노인이 병든 노인을 돌보는 ‘노인 유료간병단’도 조직하자. 현재 예측치로는 2020년이면 노인국이 된다는데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또 젊은층이 꺼리는 3D업종 등에 중년층을 정책적으로 투입하는 방안도 고려해봄 직하다. 일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면 4교대. 5교대면 어떤가. 늙은 근로자들이 불평없고 성실하다는 것은 이미 일부 사업장에서 증명됐다. 기업도 작업환경을 점차 노인 친화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은퇴 없는 삶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남은 시간은 길다. 그 시간을 자신이 지배해야 ‘내 인생’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시간’에 자신이 행복해지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보니 필자도 아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오늘 밤 더 고민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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