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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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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 기사입력 : 2005-08-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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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가권력의 남용에 의한 범죄에 대해 민·형사상 시효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조정해야 한다는 발언을 두고 정치권이 소란스럽다. 노 대통령이 비록 하루가 지나 특수한 경우 논의될 수 있고. 또 주된 것은 앞으로의 일에 방점이 찍혀있다며 한발짝 물러섰지만. 논란이 수그러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특정 범죄행위라 하더라도 공소시효를 없앤다는 것은 현행법상 논란이 될 수 있다. 한편에서는 국민적·사회적 합의가 전제된다면 시효를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고. 다른 편에서는 형벌불소급의 원칙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반인륜적 범죄에 관한한 시효자체를 두지않는 경향이 뚜렷하다. 나치의 학살범죄에 대해 언제든지 처벌이 가능토록 한 독일과 나치 협력자에 대해 그 시효를 없앤 프랑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집단살해죄. 비인도적 범죄. 전쟁범죄 등을 처벌대상으로 지난 98년 채택된 로마규정도 공소시효 자체를 두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 로마규정에 서명한데 이어 2년뒤 국회의 비준을 받아 83번째 비준국이 됐다.

      국내에 한정하더라도 지난 95년 제정된 5·18민주화운동특별법에서 일정기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정지시켜 관련자를 처벌한 적이 있다. 정치권이 뜻만 같이 하면 공소시효는 현행법을 뛰어넘어 얼마든지 정지시키거나 배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의 본질이 공소시효의 배제 여부라고 규정하기엔 찜찜하다. 즉 그 형식은 공소시효를 빌렸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은 어둠 속에 갇혀있는 우리의 과거사를 밖으로 드러내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둬야 하는지의 문제가 본질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의 과거사 문제의 시발은 제헌국회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설치됐던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민특위는 일제 강점기 36년간 자행됐던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친일파들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출범 1년도 안돼 해체되는 비운을 맞았다. 과거를 바로 세우지 못했던 우리는 이후 두 번의 군사쿠데타. 그리고 국가권력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어두운 터널 속을 걸어왔다. 2차대전 종전이후 나치협력자 6천여명을 처형하고 2만6천여명을 징역형에 처하는 등 과거청산에 성공하며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있는 프랑스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영국의 역사학자 E.H.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그는 과거와 현재는 시간상으로 구분하는 편의적 수단일 뿐이지. 과거와 현재가 단절돼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본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기록하고. 또 배우고 가르친다는 것은 결국 과거의 사실을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또 보다 진보적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제대로 평가해야만 현재에 대한 진단이 가능하며. 미래에 대한 전망도 가능해진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연속선상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왜 자주 과거를 들먹이느냐. 과거에 얽매이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지 않느냐는 말에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에 대한 정리가 끝난 이후에나 할 이야기다. 그래야만 과거의 잘못이 현재에. 또 미래에 되풀이되지 않는다. 또 그래야만 잘못을 저지른 측이나 그 잘못으로 피해를 본 측이 서로를 보듬으며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것이 진정한 사회적 통합이다.

      일제에 부역한 대가로 권력과 부를 쥔 자와 그 후손들이 떵떵거리고. 국가권력을 앞세워 인권을 짓밟아왔던 사람들이 죄값을 치르기는커녕 여전히 위세를 부리고. 정경유착을 통해 국민의 혈세로 덩치를 키운 기업이 큰소리 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반칙이 통하는 나라에는 냉소주의가 만연할 뿐이다. 올해가 마침 광복 60주년이다. 육십간지가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해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전의 것이 그냥 되풀이되지는 않는다. 역사에는 인간의 의지와 행동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서영훈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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