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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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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백월산 가야차 시배지' 조사연구 긴요해

  • 기사입력 : 2005-08-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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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 백월산 인근에서 인도원산 야생차 대엽종(大葉種)이 발견됐으며. 백월산 자락이 가야차 시배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기사가 게재된 이후 차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큰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대엽종 차나무는 최근 김철수 교수(경남신문 객원논설위원. 창원전문대 평생교육원 다도교육지도사 과정 담당)에 의해 발견됐다. 김 교수가 백월산으로부터 7㎞ 떨어진 곳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잎길이가 가장 긴 18㎝에 달하는 대엽종 야생차를 처음 본 것은 지난달 29일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전래된 차나무의 잎이 4~6㎝에 불과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이것과는 다른 야생차 대엽종임이 분명하다고 본다.

      근년들어 국내 차인들 사이에서 대엽종에 대한 괸심이 고조되고 있으며. 본래 이 차나무의 씨는 고대 가락국(駕洛國) 시조인 수로왕의 비(妃)인 허왕후가 입국할 때 가져온 것으로서 백월산에 첫 재배했다는 점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능화가 저술한 ‘조선불교통사’속에는 ‘金海白月山有竹露茶 世傳首露王妃許氏 自印度持來之茶種(김해 백월산에 죽로차가 있다. 수로왕비 허씨가 인도로부터 가지고 온 그 차씨라고 세상에 전해온다)’이란 기록이 있다. 이것이 사실일 가능성은 크다고 하겠다.

      가야시대 당시에는 궁중과 사찰. 신분이 높은 왕족들의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차가 널리 애용됐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곳곳에서 차를 재배했을 것이란 점은 ‘불문가지(不問可知)’가 아니겠는가. 백월산 동남쪽 자락의 다호리(茶戶里). 김해시 진례면의 찻골(茶洞). 상동면의 여다리(余茶里)·다곡(茶谷). 김해시 동상동 차밭골 등등 차와 연관된 지명이 부지기수로 남아 있음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대엽종 야생차나무가 발견되는 곳은 김해시 주변 산자락과 창원 봉림산. 함안 여항산 등 옛 가야 영토였던 곳이라고 한다. 이것을 보면 허왕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차나무를 심어 얻은 씨앗을 재배적지 곳곳에 뿌렸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특히 사찰에서는 주변 땅에다 반드시 차나무를 가꾸었을 것이라고 믿어진다.

      지금까지 우리는 김대렴(金大廉)이 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인 828년에 당으로부터 차씨를 가져와 지리산 자락에 심었다는 기록에만 너무 깊이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허왕후가 48년에 차씨를 가져와 백월산에 심었다고 할 때 인도원산 대엽종은 김대렴이 시배한 중국산 차보다 무려 780년이나 앞선다. 이것은 우리의 차문화 역사가 엄청나게 앞당겨질 수 있는 획기적인 일이다.

      김해지역에서는 대엽종을 ‘장군차’라고 부른다. 그 유래에 대한 기록이 ‘김해읍’와 ‘동국여지승람’에 전해온다. “고려 충렬왕(忠烈王)이 대마도(일본) 정벌 출정길에 오르는 병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내려오는 길에 김해 금강사에 들러 하루를 묵었다. 그 때 왕이 뜰에 가득한 차나무의 위용을 보고 감탄해 (마치 장군들이 도열해 있는 형상과 흡사하므로) ‘장군(將軍)’이란 이름을 내렸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지역 뜻 있는 사람들이 이 차나무를 번식시켜 얻은 ‘장군차’는 그 맛과 향이 담박해 현재 명품차 대접을 받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절대 부족해 일반인들이 쉽게 맛볼 수가 없다는 것이 아쉽다.

      백월산은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이 산에서 수도해 성불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불교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 이 곳에 가야시대의 사찰이 필히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허왕후가 가져온 차씨를 맨 처음 뿌리고 가꾼 곳이 백월산이라고 한다면 이곳은 한국 최초의 차 시배지가 되는 셈이 아닌가. 결코 예사롭게 생각하고 넘겨버릴 일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백월산과 인근 산을 중심으로 하여 야생차 대엽종에 대한 존재 여부를 세밀하게 조사해 나가는 일이 우선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그리고 그 분포도와 생태환경을 세세하게 밝혀내는 것이 긴요하다. 이곳이 차 시배지임을 확증해 줄 수 있는 더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 우리 모두 지혜와 힘을 모으는 일이 절실히 요구된다.

    목진숙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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