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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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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X파일, 야합이 문제인가, 도청이 문제인가

  • 기사입력 : 2005-07-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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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훈 정치부 차장대우

      초원복집사건이라고 기억하는가. 14대 대통령선거가 한창이던 1992년 12월 부산시장과 지검장. 지방경찰청창. 교육감. 정보기관 책임자 등 부산의 기관장들이 모여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유발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도청되어 ‘우리가 남이가’라는 서글픈 유행어를 남겼던 사건이다.

      초원복집의 모임 내용이 언론에 알려지자 YS는 “이번 사건은 민자당과는 아무 상관없다. 이 공작정치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나다. 불법도청 행위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초원복집사건 직후. YS의 지지율은 원적지별로 부산·경남 출신의 경우 54.6%에서 56.3%로. 대구·경북 출신은 35.7%에서 41.3%로 급등했고 그는 대통령이 되었으며. 복직모임에 참석해 직위해제됐던 인사들은 줄줄이 출세가도를 달렸다.

      요즈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안기부 X파일’을 만든 ‘미림팀’은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가 1992년 대선 당시 최초로 만들어 운영한 후 해체하였다가 1994년 김영삼 정권이 재가동을 지시하여 1998년 초 정권교체 전까지 운영된 불법 비밀 도청 정보수집팀이다.

      초원복집 도청 사건으로 불법도청의 피해자임을 유난히 강조했던 문민정권의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불법 도청 조직이 재가동되어 수년이 지나 다시 국민들에게 도청의 악몽을 심어주고 있다.

      X파일의 직격탄은 홍석현 주미대사가 맞았다. 우리사회의 현대판 명문 귀족인 ‘이회창가의 동생’과 ‘언론사주 홍석현’ ‘최고의 재벌가’가 등장하는 이 파일의 내용은 국민들에게 우리 사회의 이른바 지도층인사들의 ‘얇은 껍질’을 그대로 들여다 보게 한다. ‘돈과 권력’이라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열쇠들을 가지기 위해 그들이 어떤 짓거리들을 하는가를 너무도 초라하게 보여준다. 또 세월은 그 도청이 이루어진 이후 도청내용이 알려질 때까지 그들이 반대했던 새로운 권력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 왔는지도 보여준다. 도청 파일이 우리에게 주는 문제는 권력과 돈과 언론의 유착 정도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이른바 중심이 얼마나 취약하고 가소로운 것인가를 보여준다.

      문제는 더 있다. 200여개나 더 있다는 다른 파일로 인해 또 누가 사회적·정치적 사망선고를 받게될지 모를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공개되지 않은 그 이외의 다른 범죄행위와의 형평의 문제”를 거론했다. 검찰은 X파일에 등장하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삼성 간의 관계 외에 김대중 정권과의 연관성까지 조사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당연히 조사해야 한다.

      X파일의 존재가 확인된 이상. 그 내용의 전체가 국민들에게 숨김없이 알려져야 한다.
    그러나 이 땅에 국민으로 사는 것이 억울해 흥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법 도청을 지시한 책임자. 도청팀 운영자. 도청 결과의 악용 사례 등 사실관계를 밝히고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벌써 도청자료에 따라 김영삼 정부 시절의 유력 정치인들이 자리를 떠났다는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다. 국민들은 그같은 이야기들의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 권리가 있다. 필요하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 소통령이라 불렸던 그 아들. 도청 보고를 받았다는 청와대 수석은 물론이고 당시 국정원장. 국내담당 차장. 정책실장 등 국정원 관계자들을 철저히 조사하여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X파일 수사는 우리나라의 심장을 들여다보는 수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필요하다면 심장수술을 해야 한다. 무서운 세상에 초라하게 살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국민이 갖게 하려면 이번 사건의 전말을 남김없이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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