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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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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정쟁(政爭)

  • 기사입력 : 2005-07-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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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점호 (객원논설위원·경남문화연구원장)
    조선의 제17대 왕인 효종(재위1649∼1659)이 죽자 부왕(父王)인 인조의 계비(繼妃) 자의대비가 어떤 상복을 입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정쟁화되었다. 이 무렵 조선 조정은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장악한 서인 세력과 인조의 중립에 정책으로 기용된 남인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인조. 효종 대에 남인은 주로 영남학파의 주리론(主理論)을 주장하고 서인은 기호학파의 주기론(主氣論)을 주장하는 학문적인 대립을 벌였으나 현종 대에 와서는 본격적인 정치 논쟁을 일삼곤 했다. 예론(禮論) 역시 처음에는 학문적인 대립에서 시작되었지만 나중에는 정쟁으로 확대된 사건이었다.

      3년상을 치를 것인가. 1년상을 치를 것인가를 놓고 서인과 남인의 이 복상 논쟁은 극단적인 감정 싸움으로 치달아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정쟁으로 확대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정쟁은 지방으로 확대되어 재야 선비들 사이에서도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급기야 현종은 1년상을 확정지으며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지 말 것을 엄명했고. 만약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자는 엄벌에 처하겠다는 포고문을 내렸다. 그러나 복상 문제는 시도때도 없이 불거져 나와 양쪽 수뇌들이 번갈아 탄핵을 받아 귀양을 가기도 하고 집권과 실각을 되풀이했다.

      정쟁(政爭)이 나쁘다는 것은 정치인을 비롯한 국민 모두가 다 아는 일이다. 정당정치가 비록 ‘주의’와 ‘주장’ 속에 자라고 민주주의가 얼마간의 갈등과 대립. 입씨름 속에 발전한다고는 하지만 최근 각 당이 내놓는 논평 등을 보면 어쩌다 우리 정치언어가 이토록 타락했는지 한마디로 저질정치의 표본을 보는 것 같다. 해 묵은 전력시비에다 인신공격. 낯뜨거운 극언과 저질언어들이 어우러져 차마 낯뜨거워 듣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우리 속담에 ‘말 많은 것은 과붓집 종년’ 이라는 말이 있다. 과붓집에서 심부름하는 계집종은 바깥소문을 들어서 집안에 들여오고 집안의 일을 밖에 나가 이야기하게 되므로 말이 많다하여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이 계집종은 과부댁의 잔심부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 과부댁의 생각이나 입장을 동네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대변인 역할까지 했다. 그래서 이 계집종은 항상 동네사람들의 입술에 오르내리기 일쑤였다.

      요즘 각 정당마다 과붓집의 말 많은 계집종보다 더한 언어공해가 쏟아지고 있다. 대변인들이 내놓는 성명들을 보면 마치 시중잡배나 지각없는 어린아이들의 말싸움이 아니냐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여야 정당의 확대간부회의에서 나오는 말도 십중팔구는 상대 정당에 대한 비방이나 비난 일색이다. 정책이나 법안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라는 것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우리나라는 지금 어떻게 보면 천하태평 같지만 사회 곳곳에 만연한 패배주의와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 분열과 반목으로 사분오열된 상태다. 목표가 무엇인지. 어디를 향해 내달려야 하는지. 또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국민소득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가는데 일본이 6년. 싱가포르가 5년이 걸렸지만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넘은 지 올해로 꼭 10년째이지만 아직도 2만달러는 산 넘어 산이다.

      더욱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3%대로 더 추락하는 등 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안보 교육 등 다른 현안도 난기류에 싸여 있다. 국민들은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대책과 청년실업대책. 농어촌 삶의 질 향상. 저출산·고령화사회 대책 등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관심 밖이다. 최근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聯政) 구상 발표와 관련. 정치게임. 권력게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여야의 이전투구가 극에 달하고 있다. 이 바람에 민생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고 오히려 국민이 정치권을 걱정하는 세상이 됐다.

      연일 30도가 넘는 찜통더위로 국민들은 지금 몸도 마음도 지쳐 있다. 낮 더위뿐만 아니라 잠 못 이루는 열대야까지 겹치면서 몸이 축축 늘어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정치권이 이러한 피곤한 국민들에 청량제와도 같은 희망의 정치를 펼쳐주지는 못할망정 빈정거림과 인신공격. 극언. 저질언어로 무장한 정쟁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더욱 무덥고 짜증스런 올 여름을 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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