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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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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천년의 사랑

  • 기사입력 : 2005-07-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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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진숙(논설주간)
      세상에서 사랑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고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미움과 증오. 좌절과 절망의 늪에서 뻐져나올 수 있게 하고 모든 것을 포용면서 용서하는 종교적인 큰 사랑이 있는가하면 시기와 질투와 집착으로 뒤섞인 남녀간의 사랑도 있다. 일반적으로 남녀간의 사랑이란 상대방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호감으로 진전되다가 자연스레 연애관계로 발전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한눈에 영혼을 빼앗겨 버리는 운명적인 사랑이 바로 이것이다. 어느 한 사람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가슴이 떨리고 온 몸이 저려오면서 두 발이 얼어붙어 버린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지만 모두에게 이러한 만남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불가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인연법으로 설명한다.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이 세상에서 연인으로 만난 것은 이전 3생의 연(緣)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최근 합천 해인사 법보전 비로자나불상과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상이 신라 말기인 883년에 만들어진 국내 최고(最古)의 ‘쌍둥이 목불’로 밝혀지면서 누가 무슨 연유로 이 불상을 조성했는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밝혀줄 ‘誓願大角干主燈身賜彌右座妃主燈身○’이란 묵서명(墨書銘)이 법보전 불상 내에서 발견됐다. ‘서원을 세워 대각간님의 등신불과 그 바른쪽에 부인의 등신불을 모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그 주인공은 신라말기에 (대)각간을 지낸 위홍(魏弘)과 그와 실질적인 부부관계였던 진성여왕임을 알 수 있다. 여왕은 공주시절부터 삼촌인 위홍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두 남녀는 저승에서도 연인으로 만나 사랑할 것을 염원해 그 신물로서 여왕이 등극하기 4년전에 이 등신불을 조성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죽음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을 기원했던 것이다.

      여왕은 등극후 위홍에게 대구화상(大矩和尙)과 함께 향가를 집대성한 ‘삼대목’을 편찬케 했다. 사실 경문왕의 동생인 위홍은 황룡사 9층탑 중수 총책을 맡는 등 일찍부터 굵직굵직한 국사를 처리한 실력자였다. 헌강왕 때에는 최고벼슬인 상대등에 임명돼 왕의 정무를 보좌한 그였다. 진성여왕 2년인 888년에 위홍이 타계하자 여왕는 매우 애통해 하면서 ‘혜성대왕(惠成大王)’이라는 시호를 내렸다고 한다. 그후 그의 원혼을 달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원당을 세워 명복을 빌었다고 전해 온다.

      해인사 창건이후 조선 전기까지 이 절이 매입 또는 기증받은 토지의 내력을 기록한 문건을 보면 885년 이전에는 수풀이 무성하다하여 해인사를 ‘北宮海印藪’라 부르다가 890년에야 ‘惠成大王願堂’이라 했음을 알게 된다. 여왕은 즉위 원년에는 각 고을의 세금을 1년간 면세하는 등 국사에 힘썼으나 상대등 위홍이 타개한 후에는 애통해 하면서 정사를 등한시하다가 국내 곳곳에서의 반란을 맞았다. 여왕은 통치 11년만인 897년에 조카인 요(嶢:효공왕)에게 양위한 뒤 북궁(北宮)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서거해 황산(黃山)에 묻혔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왕은 북궁. 즉 사랑하는 이의 위패와 자신들의 등신불이 있는 해인사를 찾아와 숨을 거두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해인사 입구에는 지금도 황산리(黃山里)란 마을이 있다. 여왕은 이곳에 묻혔다가 후에 경주로 옮겨간 것이 아닐까.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숙·질녀간의 사랑은 불륜에 해당되겠지만 당시 신라 왕실에서는 친형제자매를 제외하고는 가능한 일이었다. 서양 왕가에서도 사촌간의 혼인은 허락되지 않았던가. 여왕은 사랑하는 님을 위해 일평생을 바친 여인임에 분명하다. 님(위홍)을 잃은 후 10년간은 오직 그를 그리는 세월이었으리라. 왕위에도 연연하지 않고 운명적 사랑을 위해 온몸을 던진 여왕의 진정한 순정이 11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등신불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시간을 초월한 이 지극한 사랑을 두고 어찌 함부로 말할 수가 있겠는가. 아무도 죽음을 거부할 수 없듯이 운명적인 사랑또한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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