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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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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신음하는 사회

  • 기사입력 : 2005-06-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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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자들어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일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발생하고 있음을 볼 때 이대로 가다가는 도덕이 전도되고 법이 효력을 상실해 사회가 극도의 혼란에 빠지고 나라가 난파(難破)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감마저 든다.

        희생과 봉사의 불빛은 풍전등화(風前燈火)처럼 깜박거리고 남이야 죽든말든 자신의 욕심만 채우면 그만이란 듯이 곳곳에 이기심(利己心)의 바위덩이가 자리해 순리대로 흘러야 할 양심의 물길을 가로막고 있다. 못 가진자의 몫까지 뺏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가진 자들은 물질의 노예로 전락해 끝없은 욕망의 바벨탑을 쌓고 또 쌓는다.

        땀 흘려 노력해 얻은 물질이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지만 이기주의자들은 자신에게 빼앗김을 당하고 가슴에 피멍이 든 상대방의 아픔을 외면해 버린다. 희생된 자들이 좌절의 늪에 빠져 신음하고 있더라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물질을 지키기 위해 또는 더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감행한다. 철면피(鐵面皮)로 무장하고 돈이 모이는 것이라면 기를 쓰고 달려든다. 투기로 얻은 물질에 대한 과세를 피하기 위해 온갖 편법을 자행한다.

        선조들은 노력하지 않고 얻어진 재물은 도리어 화를 불러들인다하여 경계했다. 그리고 지나친 물질의 소유는 오히려 정신세계를 황폐화시킬 수 있다면서 금기시하기도 했다. 횡재나 축재 그 자체가 곧 불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재물에 눌려 자신의 의지나 가치관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그렇게 되면 사물을 바로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사라지고 모든 기준을 물질에 두려고 하는 배금주의자로 전락해 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게 바로 불행의 길로 접어든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물질의 회오리 속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오늘날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목표를 물질 축적에 둔다면 끝내 만족한 삶을 이룰 수가 없다. 왜냐하면 물질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물질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 몇년 사이에 숱한 정치인들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고 들통나 감옥행 열차를 탔지만 그렇다고하여 이러한 행태가 근절됐다고 믿기는 어렵다.

        어쩌면 더 교묘한 방법으로 검은 뒷거래가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정치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항변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는 신세”라고 말한 어느 정치인의 고백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자신이 해야 할 책임과 의무는 깡그리 망각하고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는 사회. 물질이 최고의 가치로 둔갑해 가는 현실. 선과 양심이 그 힘을 잃어가고 악과 불법이 판을 치는 나라라면 희망이란 파랑새가 어찌 둥지를 틀고 살수가 있겠는가.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한번 돌아보자. 끼니를 거르는 이웃은 없는지.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상대가 고통스러워 하지는 않는지. 민주시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를 조용히 반성해 보자. 물질과 비리에 짓눌려 신음하는 사회를 치유하는데는 건강한 정신과 올바른 양심만이 최선의 영약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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