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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어, '窮民軟禁'!

  • 기사입력 : 2005-05-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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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호 (수석논설위원)

        “언제부턴가 말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했다.” 50대 초입인 K씨의 넋두리는 명예퇴직 라인에 들어선 40·50대 중년들의 공통된 화두다. ‘20년 벌어 50년 먹고 산다’는 인생설계를 담은 책도 나왔지만 20년은 이미 써버렸다. 지난 세월의 경험을 밑천삼아 인생 2모작을 해보려 해도 오라는 곳도. 갈 곳도 마땅찮다. 제 앞길 가리기에 바쁜 자식에게 남은 생을 맡길 수도 없고. 돈이 효자라고 신문지상에 ‘국민연금’字만 보이면 어찌됐든 눈길이 간다. ‘어찌됐든’이란 표현을 할 수밖에 없는 건 국민연금의 앞날이 그렇게 평탄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정치권은 국민연금을 손질한다고 3년째 질질 끌어오다 또 6월 임시국회로 넘겼다. 20. 30대 생각이 다르고 40. 50대 생각이 틀리니 표가 싹뚝 잘려 나갈까봐 ‘뜨거운 감자’ 만지듯이 한다. 적당히 조몰락거리다 다음 정권에 넘겨 ‘면피’나 할 요량인가. 불신+불만에다 혼란스럽다고 아우성이니 힘빠질 때까지 기다려 보자는 심보인가.

        정부가 내놓은 안을 보면 ‘적게 내고 많이 받던’ 것을 ‘더 내고 덜 받는’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지금처럼 퍼주다간 30년쯤 뒤엔 거덜이 나고. 저출산·고령화 사회를 들먹이며 다음 세대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게 이유다. 자식세대까지 걱정해주니 고맙긴 하지만 窮(궁)자 낀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窮民(궁민)’들로선 평균수명이 길어진다는 보도조차 반갑지 않다.

        마산 창원에는 통술집이란 곳이 있다. 옆 손님과도 격의없이 맥주잔을 나누고 시중의 잡사가 안주감이 되는 여론마당이다. 이곳에서 국민연금을 보는 시각은 대체로 세 분류인 것 같다.

        먼저 아예 없애고 낸 돈 돌려받자는 주장이다. 보험이나 개인연금은 급할 때 해약하면 그만이지만 세금 내듯 옴짝달싹할 수 없어 ‘軟禁(연금)’상태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봉급쟁이는 월급명세서 보면 짜증나고 자영업자는 세금고지서 받는 기분이라니 정치권도 속앓이할 필요 없이 깨끗이 정리하자는 거다. 

        또 하나는 국민투표에 부쳐 차제에 확실히 하자고 한다. 국회에서 제대로 토론된 적조차 없고 전문가들도 훈수하듯 여러 갈래니 헷갈릴 뿐이다. 복지부나 국민연금관리공단도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며 땜질처방 궁리나 하는 것처럼 비친다. 차라리 지금 왕창 뜯어 고친다면 솔직하다는 평이라도 들을 거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어차피 세대간 계층간 처지에 따라 불만은 있을 수밖에 없는 제도이고 보면 더 내고 덜 받더라도 안정적으로 노후설계를 할 수 있도록 문제점을 까발려 국민의 뜻을 묻는 것이 해법이란다. 위대한 지도자는 당장 욕을 먹더라도 미래를 보고 정책을 결정하고 일관성있게 밀고 나가야 된다고 토를 단다.

        끝으로 노인들의 일자리를 늘려 지금보다 줄어든 연금수령액을 보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부류다. 국민연금이 실제 필요한 사람들은 중하계층이고 보면 본래 받던 소득 50% 수준의 기본연금에 일하면서 20~30%는 보태야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설사 비축물량이 있더라도 아침 저녁으로 등산이나 하고 여행을 즐기는 건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필자도 이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노년을 예전에 비해 길게 보내야하는 추세에 일자리가 보장된다면 불신과 불만을 줄일 수 있다. 사실 노친네의 웰빙이란 게 별건가. 일하는 즐거움에 자식에게 손 안벌리고 가끔씩 손자에게 용돈을 쥐어줄 수 있다면 스트레스 받을 일이 그리 있겠는가. 노인건강센터도 필요하겠지만 소일할 수 있는 일터에 비교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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