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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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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매화는 피었건만

  • 기사입력 : 2005-02-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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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점호(객원논설위원·경남문화연구원장)


    어느덧 입춘절(立春節)이다. 하지만 아직도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음력 섣달이라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봄의 따사로움을 기대하는 사람의 심정을 매화가 알기라도 하듯 살며시 꽃잎을 내밀며 깊고도 맑은 향기를 내려놓는다.

    이러한 매화를 중국의 황벽(黃檗) 선사는 ‘매서운 추위가 한번 뼈에 사무치지 않았던들/ 어찌 매화가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요(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 라고 노래했다. 매서운 한파도 아랑곳 않고 봄의 기다림에 가장 먼저 답하는 것이 매화가 아니던가.


    손바닥만한 마당 한 모퉁이에 있는 매화나무에도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다. 꽃잎 아래쪽에 푸른 기운이 감도는 청매화다. 꽃망울이 다 터지려면 더 기다려야 되겠지만 거뜬히 겨울을 이겨낸 마른 가지 곳곳에 동글동글 맺혀있는 꽃망울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어떤 놈은 일찍 고개를 내밀었다가 이번 추위에 얼었는지 풀이 죽어 있다. 마치 삶에 지쳐 늘어진 우리네 서민들 같다.


    나흘이 지나면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이다. 축하와 덕담과 선물이 오가고. 매화가 피는 이 ‘좋은 때’가 고아원 양로원 등 사회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나 생활보호대상자. 가난한 모자가정. 무의탁 노약자. 소년소녀가장들에겐 모두가 꿈같은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가난한 사람. 외로운 사람. 불행한 사람들에겐 올해도 여전히 춥고 서글프고 서러운 세밑이다.

    특히 올해는 경기침체 탓인지 사회복지시설 문전이 예년에 보기 드문 정적에 싸여있고. 시설 생활자나 어려운 이웃을 향한 온정의 발걸음과 손길 또한 예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해가 갈수록 이 사회에 그늘진 곳이 있다는 사실이 잊혀지고 있는 느낌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소외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흔히 불우이웃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물질적으로 혹은 인간적으로 최저생활. 한계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절대빈곤층은 여전히 수백만을 헤아리고 각종 수용시설에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밝은 세상으로부터 차단된 채 지내고 있다. 그리고 소득이 최저 생계비 수준에 겨우 미치는 바람에 기초생활 대상자에 편입되지 못한 준극빈층도 문제다.

    기초생활 대상자에 선정되면 각종 세금 혜택과 의료비 지원 등을 받을 수 있지만 이들은 그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없어 사회 안전망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다.

    고층아파트와 빌딩이 날마다 치솟아 숲을 이루고 자가용 승용차의 물결이 웬만한 주택가 골목까지 메워가는 이 현실의 한편에는 한달 생계를 겨우 몇 만원으로 해결해야 하는 이웃이 많다는 것은 기막힌 노릇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그대로 둔다면 나머지의 현실이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 하더라도 결코 떳떳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복지국가 건설을 부르짖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그것은 사실 정부의 힘만으로 될 수도 없고 또 될 일도 아니다. 선진국에서도 흔히 보는 일이지만 민간에서 이웃끼리의 힘이 모일 때 비로소 복지재원이 이루어지고 사회의 건강성이 유지된다.

    지금부터라도 이 ‘좋은 때’가 더욱 서러운 우리의 이웃들을 되돌아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과 진정으로 더불어 살려는 따뜻한 마음을 갖자. 한 마디의 따뜻한 위로와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작은 도움이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희망과 용기를 갖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인간사 가운데 춥고 배고픈 것만큼 서러운 것이 없다. 춥고 배고프다는 것은 곧 개인 삶의 최하위 개념이다. 복지 정책은 춥고 배고픈 국민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지극히 소박한 소명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복지는 곧 그 사회 구성원의 성숙도를 반영한다.

    흔히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말은 함께 느끼는 마음. 나눔의 여유를 우리 모두 되살리자는 것이다. 딱한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거니와 어차피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라면 좀 더 인정 있고. 인간미 넘치고. 살맛 나는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도 행복하고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 추운 겨울. 마른 가지에 꽃을 피우며 인간에게 희망의 봄을 알리는 매화처럼 우리 모두 이웃을 둘러보고 생각하는 밝고 건강한 희망을 노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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