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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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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경복궁에서

  • 기사입력 : 2005-01-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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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훈 정치부 차장대우

    조선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을 십수년 만에 다시 찾았다. 대한(大寒) 추위가 매섭다. 관람객 중 내국인은 거의 없고 20~30명씩 줄을 지어다니는 중국과 일본 관광객. 그리고 2~3명씩 다니는 구미 여행객들이 추위 속에서 고궁을 거닐고 있다.


    십수년 만에 보는 경복궁은 조선총독부 건물이 보이지 않고 광화문에서 근정전까지 시원하게 열려있어 좋았다. 흥례문이 조선총독부를 헐어낸 자리에 복원되어 있었다. 2009년까지 예정된 경복궁 복원공사가 여기저기서 진행되어 궁안 곳곳에 방호막을 쳐 놓았다.


    한참을 걸으니 명성황후 시해 장소를 알려주는 표지가 나타났다. 옛 건청궁 자리다.


    경복궁만큼 일본과 악연이 깊은 곳도 없다. 조선 태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후 1395년 창건한 경복궁은 임진왜란으로 1592년 소실되었다.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떠받치려했던 흥선대원군은 소실된지 273년이 지난 1865년 다시 경복궁을 짓기 시작해 1868년에 복원했다. 그러나 일제는 1910년 이후 경회루 근정전 등 일부 건물만 남기고 강녕전 교태전 동궁 홍례문 등 궁궐건물 대부분을 파괴했다.


    대원군이 당백전(當百錢)까지 발행하는 경제적 무리를 무릅쓰고 경복궁을 다시 지은 뜻이.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고 10년째 경복궁을 복원하는 지금의 우리시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올해는 을사조약 10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양 제국을 결합하는 이해 공통의 주의를 공고히 하고자 한국의 부강지실을 인정할 수 있을 때에 이르기까지 이 목적을 위하여 다음의 조관을 약정함.


    1.일본 정부는 일본 외무성을 경유하여 금후 한국이 외국에 대하는 관계 및 사무를 감리·지휘하고 일본의 외교 대표자 및 영사는 외국에 있는 한국인 신민 및 이익을 보호함.


    2.일본 정부는 한국과 타국 간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수하는 책임에 있어서 한국 정부는 금후 일본 정부의 중개를 경유하지 않고서는 국제적 성질을 가진 어떠한 조약이나 약속을 하지 않기로 함.


    3.일본 정부는 그 대표자들로 하여금 한국 황제 폐하의 궐하에 1명의 통감을 두되 통감은 전적으로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함을 위하여 경성에 주재하고 친히 한국 황제를 알현하는 권리가 있음.-하략-’


    결코 국가간에 맺어질 것 같지 않은 문구로 만들어진 5개항의 조약으로 조선은 독립국의 지위를 잃었다.


    이후 조선은 1945년까지 일제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으며. 일부 친일파를 제외한 온 국민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그 후 박정희 정권은 무상원조 3억달러. 차관 3억달러에 우리 역사와 민족의 40년 아픔을 청산했다. 그러나 세상사는 참 묘한 것이다. 우리 국민은 그 자금을 경제개발의 종자돈으로 사용했고 지난 40년간 경제성장을 해 왔다.


    하지만 고통당한 개개인 국민들의 보상은 전체주의적 정부의 강박 속에 묻혀졌고. 최근 청구권 협상과 관련된 문건들이 공개되자 반발이 거세다. 과거사 청산을 위한 국회의원모임 소속 여야의원 31명은 20일 정부의 한일회담 회의록 공개와 관련해 한일협정의 재협상. 공식사과와 보상을 양국 정부에 요구했다. 이들은 한일 양국 정부에 대해 △한일협정 재협상의 개시 △한일협정 관련 문서의 전면 공개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촉구하고 “양국의 한일협정 추진 당시 책임자는 즉각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잘못된 과거는 보정(補正)해야 한다.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 글을 쓰는 청와대 춘추관도 경복궁 영역이었으나 궁궐 북쪽에 지은 일본 총독관저의 일부로 경복궁에서 떨어져 나온 곳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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