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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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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좋은 의도와 나쁜 결과

  • 기사입력 : 2004-12-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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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훈(사회부 차장대우)


    배고픈 사람에게 매일 먹을 것을 주어 허기를 면하게 하는 것은 올바른 일일까. 그 대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그 사람의 자활의지를 없애기 때문이다. 그러면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은 나쁜 사람인가. 아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올바른 사고를 가지고 착한 행동을 해도 그 결과는 터무니 없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오는 것을 우리는 더러 본다.


    의도와 결과 사이의 과정이 단순하고 변수가 적으면 의도와 결과가 일치하기 쉽지만. 그 과정이 복잡하고 불특정 다수의 복합적 의사가 중간과정에서 개입된다면 결과는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해마다 되풀이하는 대학입학제도의 이른바 개선은 이같은 좋은 의도와 나쁜 결과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대학서열화를 없애고 나라의 인재를 전국 골고루. 여러 분야에 배치하려는 교육당국의 좋은 의도는 50만 수험생과 교사. 학부모들을 완전히 코끼리 만지는 장님으로 만들고 있다. 학생들은 어느 대학에 어떻게 지원해야 될지 몰라 불안해 하고. 대학은 어떻게 하면 좋은 학생을 뽑을 수 있는지 몰라 불만이다. 초등학생이라면 의도가 순수하면 결과가 나빠도 용서가 된다.

    그러나 국가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이 잘못된 결과에 대해 순수한 의도만을 주장하며. 그 좋은 의도에 맞추어 행동하지 않은 전국민의 잘못을 탓할 수는 없다.
    내년 고교1학년부터 적용하는 내신성적의 상대평가도 그것이 교실에서 가져올 과정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대학입시는 전국적인 선발의 과정인데. 고교 3년동안 학생들은 바로 옆의 친구를 경쟁자로 보고 살벌한 청소년기를 지나야 할 것이다. 대학입시에 몰두하는 전국민적인 관심을 생각할 때 상대평가 내신으로 대학입학을 해야하는 고교 3년의 기간이 당하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인성의 결핍을 가져오게 할지 두렵다.

    교육이 부와 지위를 세습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교육과정에서 기회균등은 꼭 필요한 사항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한국사회 한 가운데서 평준화라는 좋은 의도만을 가진 교육은 자본주의 위력 앞에 힘없이 무너지고. 교육당국은 수월성(秀越性·Excellence)교육이라는 방안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자본주의적 사회환경에서 제대로 의도대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지 의구스럽다. 정부는 저소득층의 영재를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발굴해 수월성 교육을 통해 길러낼 방침이라고 밝힌다. 이 제도에 발맞추어 3~4살 때부터 조기교육이 얼마나 극성을 부릴지 걱정스럽다. 저소득층 영재는 참으로 찾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를 버릴 수 없다.


    의과대학과 법과대학의 전문대학원화도 그 좋은 의도와는 달리 가난한 사람들이 의사와 법률가 직종에 진입하는 기회를 심각하게 박탈당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 전문대학원들을 목표로 하는 학원들이 벌써 고교과외와는 차원이 다른 비용으로 대학생들을 수험생으로 길러내고 있는 현실이 이것을 증명한다. 전문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4년동안 수험생 생활을 뒷바라지할 수 있는 저소득층은 아예 없고. 이른바 중산층도 대부분 불가능할 것이다.


    좋은 의도의 제도개선들이 가난하고 재능있는 학생들의 기회를 막는다면 이것은 심각하게 잘못된 것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입장과 상관없이 그 자식들이 능력에 따라 사회의 엘리트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장래는 밝지 못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사회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사회가 점점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자식의 미래가 결정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것을 많은 부모들이 실감한다. 교육제도의 개선은 더 많은 청소년들에게 장래의 기회를 보장하는 열린사회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단 한 명의 청소년이라도 공정한 규정(Rule)에 따라 게임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다. 하물며 많은 청소년들이 뭔가 룰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문제는 국가적으로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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