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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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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相爭에서 相生으로

  • 기사입력 : 2004-12-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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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진숙 (논설주간)


    투쟁 일변도의 강성 노조들이 최근들어 유연하게 변모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어 주목된다. 북과 꽹과리채를 놓고 붉은 깃발과 머리띠를 푼 다음 회사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류 변화는 노조가 국민과 지역사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그 존립기반이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다는 각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지난 여름. 극렬한 투쟁을 벌임으로써 ‘하투(夏鬪)’의 핵심으로 부상했던 LG칼텍스정유 노조가 조합원 647명이 징계받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태를 겪은 것을 계기로하여 상생(相生)하는 노사관계로의 변화가 일고 있다고 한다. ‘비 온 뒤에 더욱 땅이 굳어진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노사 상호간 엄청난 상처를 입은 후에야 비로소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직장이란 공동운명체를 다함께 살려나가야 한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LG정유노조는 최근 민주노총을 탈퇴했으며. 지난 9일. 노조집행부와 대의원 전원이 참여한 수련회를 개최해 ‘강경투쟁노선’을 버리고 화합과 협력의 노사관계 정립을 노조활동의 새로운 방향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즉 ▲기본원칙 준수 ▲현장관리 철저 ▲혁신활동 ▲인사하는 문화 정착 ▲상사를 존중하는 풍토 조성 등을 세부 실천사항으로 삼고 내년초 ‘무분규 선언’ 채택을 검토중이라는 것이다. 현재 조합비가 가압류돼 있음에도 매달 200만원의 돈을 소년소녀가장돕기 기금으로 내놓고 있으며. 여수지역 복지단체에 라면과 빵 등을 기증했다. 시민단체들이 노조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벌이고 있는 LG제품 불매운동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도 한다. 가히 ‘벽해상전(碧海桑田)’과도 같은 변화라 할 만하다.


    90년대 당시 가장 극렬한 투쟁활동을 펼친 현대중공업 노조의 변신도 큰 관심거리다. ‘안정속의 개혁’을 내걸고 무분규 행진을 거듭해오면서 모인 조합기금 100억원 가운데 일부를 지역사회를 위해 쓰고 있다. 온열치료기·안마기·정수기 등 200여점의 물품 3천500만원어치를 사업장이 소재한 울산시 동구청에 기증했으며. 관내 소년소녀가장 40명에게 다달이 후원금을 보낸다. 자체적으로 개최하는 경로잔치 및 어린이날 행사에는 노조간부들이 빠짐없이 참가하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현대백화점 노조도 연말을 맞아 전 점포에서 먹거리 티켓판매행사를 비롯한 수익사업을 펼쳐 3천여만원의 수익을 올려 복지단체에 기증할 것이라 하며. 자동자부품을 생산하는 업체인 캐피코 노조에서도 달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단다. 이처럼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는 노조의 흐름이 중소업체들에게까지 퍼져나간다고 하니. 이러한 새 물결이 상생(相生)의 노조 문화를 형성하는 ‘희망의 나무’로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된다.


    휴대전화를 만드는 회사인 팬택에서 수일전 ‘노사 상생’의 길을 여는 의미있는 결정이 있었다. 노조가 대의원 회의를 열어 향후 회사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보고 임금동결을 결의하자 경영진에서 긴급회의를 개최해 예년 수준인 10% 내외의 임금인상 및 격려금 지급을 결의한 것이다. 사측이 노조의 결정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회사가 어렵기는 하지만 임금을 동결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며 경영진이 더욱 각성해야 한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정말 듣기에도 흐뭇한 아름다운 일이다.


    한국노총 경기도지역본부 이화수 의장이 손학규 경기지사의 외국기업 투자유치를 위한 해외출장에 여러 차례 동참해 17억달러(46건)의 외자를 끌어오는데 한몫 했다고 한다. 강성 노동운동가로 알려진 그가 “그동안 노동운동은 목표를 정하고 투쟁해 관철시키는 식이었지만 이제는 국민이 그같은 방식을 원치 않는다”면서. “일자리가 줄어들면 노조의 존립기반도 위태롭게 되기 때문에 일자리를 만들어 전체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책임있는 노조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이러한 그의 인식은 지금 우리 노동운동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일깨워주는 말이다.


    그렇다. 지금껏 투쟁 지향적이던 우리의 노조 문화는 이제 지양돼야 한다. 동일선상에서 마주오는 기관차가 다함께 멈추지 않으면 그 결과는 파멸뿐이다. 외나무 다리위에서 서로 싸운다면 모두가 추락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노사 모두 상쟁(相爭)의 문화를 청산하고 한 차원 더 높은 상생(相生)의 무대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에서 노사 공히 신뢰성 회복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존재해 온 불신의 먹구름을 말끔히 걷어내려면 반드시 기업의 객관적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점을 사측은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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