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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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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여자의 눈물과 감동

  • 기사입력 : 2004-04-09 00:00:00
  •   
  •  ==== 이종근 논설위원 겸 기획사업 부국장
     
     필자가 초년병 기자 때인 80년대초 일이다. 사회부 사건기자로 이른 아침
    부터 경찰서로 직행해 기사거리를 줍는 일은 일과였다. 이방 저방을 둘러보
    는 사이 간밤에 관내에서 일어난 웬만한 사건 사고는 다 알게 된다. 수사과
    나 보안과(지금의 방범과) 유치장은 그 중에서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
    이다. 어느 날 예나 다름없이 보안과 사무실을 둘러보던 때였다. 한켠에 고
    개를 떨군 채 측은하게 보이는 아가씨가 눈에 띄었다. 이제 갓 스무살도 안
    된 듯한 그녀는 얼핏 보기에도 상당한 미모였다. 기자의 호기심을 더욱 자
    극한 것은 티없이 순수해 보이는 얼굴 생김새였다.

     책상을 지키고 있는 직원 더러 무슨일로 붙잡혀 왔느냐고 조심스레 묻자
    사연은 이러했다. 그 아가씨는 경기도 어느 지방에서 난생 처음 마산으로
    와 며칠전부터 신포동 사창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홀로 중병을 앓고 있
    는 어머니가 병원비가 없어 강제 퇴원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자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직업소개소였다고 한다. 거기서 알선한 곳이 사창가였고, 그
    녀는 돈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자기 한 몸은 아까울 게 없다고 생각하고 여
    기까지 왔던 것이다. 그녀는 경찰 신세를 지게 된 자신의 처지보다는 몸져
    누운 어머니 생각에 눈 앞이 캄캄해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시대가 변해 요즘의 사창가엔 그런 류의 사연으로 인해 생활하는 여성은
    아마 없으리란 느낌이다. 최근 전국의 사창가를 내후년부터 모두 폐쇄키로
    하는 정부 방침이 있자 업주들이 여론조사로 맞서는 등 반발하고 있다. 필
    요악이라고 하지만 일반인들의 공감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를 일이다. 일제
    강점시기에 정착하기 시작한 사창가는 강제로 끌려가 온갖 수난을 겪어야
    했던 우리의 위안부 할머니들만한 한(恨)의 역사도 없을 것이다. 그 눈물
    의 의미를 쉬이 가늠키 어려운 젊은 세대가 상업적 이벤트의 소재로 삼았다
    가 혼쭐이 난 일이 얼마전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누드 파동`의 주인공 탤런트 이승연양은 뒤늦게 참회의
    눈물로 나눔의 집을 방문,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용서를 빌었으나 돌아온
    건 고함과 삿대질이었다. 이에 굽히지 않고 이양은 혼자 말없이 참회의 방
    문을 되풀이하자 이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노여움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
    는 후문이다. 그녀의 행동이 또 다른 쇼였다는 비난을 듣지 않으려면 이양
    스스로 다짐했듯 앞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투표일이 일주일도 안남았다. 여성 정치인들의 활약이 남성에 비해 전례
    없이 두드러진 가운데 여성의 눈물이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바로 한나
    라당 박근혜대표와 민노당 최순영 부대변인, 그리고 민주당의 추미애 선대
    위원장의 눈물 이야기이다. 박대표가 얼마전 TV의 당 대표 연설에 나와 60
    년대 시절 겪은 일화를 회상하며 눈물을 보이자 이를 본 최 부대변인은 홈
    페이지를 통해 당시 여공으로 청춘을 바쳐야 했던 많은 또래들이 새삼 떠올
    라 하염없는 눈물이 흐른다고 했다.

     추위원장은 며칠간 호남지방에 머물면서 아예 눈물의 고행을 마다하지 않
    았다. 전남도청 앞에서 5.18묘역까지 세걸음 딛고 한번 절하는 삼보일배
    (三步一拜)를 강행하느라 양쪽 무릎의 여린 살갗이 벗겨지기까지 했다. `
    민주당을 살려달라`고 호소하면서 감정이 북받쳐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러
    한 눈물은 TV 화면을 타고 전국에 방영됨으로써 어떤 이는 지지세력 결집
    에 효과가 있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대중 앞에서 쉽게 눈물을 보이는 연
    약한 여성 정치인상이라며 그만 두기를 바란다.

     눈물이 만일 감성을 핑계로 한 의도적인 것이라면 자신에게는 물론 남한
    테도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이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채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코자 하는 의도라면 연약하다는 비판을 들어도 남음이 없다. 더욱이 TV
    라는 대중 언론매체가 불순한 동기로 눈물 장면을 집중 보도하거나 웃음까
    지 삽입함으로써 이미지 효과를 조작하려 든다면 이는 명백히 국민기만 행
    위이다.

     그동안 감동을 준 정치를 제대로 한번 구경 못한 우리 국민들로서는 감동
    만큼 목마른 것이 없다. 스스로 감동 못하는 사람이 어찌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가. 감동이 새삼 시대적 과제이자 덕목임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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