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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국민의 뜻` 선택한 설훈 의원

  • 기사입력 : 2004-04-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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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목진숙 수석논설위원 ====

      국민 대다수가 반대한 탄핵을 무리하게 의결한 야당의원들이 엄청난 역
    풍에 휘말려 제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분노한 민심이 부메랑으로 되돌아
    와 자신들의 정치 명줄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찌감
    치 이러한 민의를 파악하고 `탄핵해야 한다`는 당론을 정면 반대하면서 표
    결에 참여조차 하지 않은 정치인이 설훈(薛勳) 의원이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지난달 22일,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하고 가결시킨 국회의원들의 대
    (對)국민 사과, 국민의 뜻을 거스른 탄핵 철회, 민주당 지도부 사퇴,
    국가적 위기상황을 방치한 것에 대한 노 대통령의 사과 등을 요구하면서 삭
    발한 다음 단식투쟁에 돌입했었다. 그는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탄핵
    을 막지 못했으며, 탄핵안 가결로 인해 국론분열이 초래된 현실에 대해 책
    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단식투쟁을 결행하면서 그는 자신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에는 민주당을 탈당할 것이며, 17대 총선에 불출마하
    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렇지만 설 의원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민주당은 거듭나
    려는 진정한 몸부림은 하지 않고 민의에 다가서려는 노력도 없이 당권파와
    개혁세력간에 싸움질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
    는 이들의 한심스런 작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
    는가 싶다. 사실 지지도가 밑바닥에 머물러 있는 민주당이야말로 가장 혹독
    한 탄핵역풍을 맞고 있는 정당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원내교섭단체는 커녕
    총선이후 당이 해체될 지도 모를 정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처해 있다
    고 할 수가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을 일찌감치 꿰뚫어본 사람이 설훈 의원이
    었으며, 그래서 그는 `탄핵만은 안된다`고 외쳤지만 몇명을 제외하고는 당
    내에서 그의 말에 귀를 귀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설 의원은 평소 민주화의 맥을 이어온 민주당과, 5·6공세력과 그 맥
    이 닿아있는 한나라당과의 정책 공조를 반대해 왔다. 이것에 대한 해답은
    그가 걸어온 삶의 이력에서 찾을 수가 있다. 대학재학시절, 유신반대 시위
    로 제적됐고 긴급조치위반으로 구속돼 3년간 수감생활을 했으며,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다시 3년간 수감됐다가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그는 민주
    화청년연합(민청련) 창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줄곧 민주화 투쟁
    의 길을 걸어왔으므로 지향하는 정치 이념이 다른 한나라당과 서로 힘을 합
    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정당하지 못한 탄핵
    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의회 폭거라고 인식했던 그로서는 탄핵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가 민주와 정의를 바탕으로 한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정치인으로 성장
    할 수 있었던 것은, 일제때 우리말과 한국사를 가르쳐 옥고를 치른 독립운
    동가였던 부친(건국훈장 애족장 추서)의 교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지난 98년, 3.15의거 성역화사업 국비 예산이 조기
    에 확보될 수 있도록 당시 김대중 대통령께 건의하는 등 힘을 썼다. 그리
    고 친일진상규명법을 발의했으며, 지난 2년간 소요된 친일인명사전 예산 4
    억원이 당초 교육부 본예산에 책정되지 못하자 예결위원으로 있으면서 살
    려 냈다. 그런데 올해의 경우 교육부가 제외한 이 부문 예산을 그가 주도
    해 교육위에서 편성했지만 예결위에서 5억원 전액 삭감됐다고 한다. 이러
    한 소식을 접한 수만명의 네티즌들이 열 하룻만에 5억원을 모금했다는 것이
    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이것이 바로 국민의 힘이 아니겠는가. 이
    러한 과정을 몸소 체험한 그는 국민의 뜻과 소망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읽
    어낼 수가 있었으며, 이것이 곧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인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달 29일 오전, 설훈 의원은 처음 자신이 표명한 요구사항이 이행되
    지 않자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민주당 탈당과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
    다. 8일간의 삭발·단식투쟁을 접은 그는 병원에 입원할 것을 권유하는 주
    위 사람들의 충고를 뿌리치고 본가로 직행했다고 한다. 그를 아끼는 고향
    사람들 가운데에는 그가 연어처럼 마산으로 되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이들
    이 많다. 고향땅에다 믿음과 보람과 소망의 나무를 심어 언젠가는 대망의
    열매를 거두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도도한 역사의 강물은 언제나 민주
    주의의 큰 바다로 흘러간다”는 그의 믿음 그대로 국민들은 피흘려 이 나
    라 민주주의를 지켜낸, 그를 비롯한 민주투사들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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