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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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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두 패러다임의 정국

  • 기사입력 : 2004-03-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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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허도학(논설위원)=========

    대통령 탄핵이란 미증유의 사태를 맞아 그런지 이번 정국이야말로 극명하
    게 가치충돌을 낳고 있다. 각자가 서로 옳다고 믿는 바에 충실할 뿐 아니
    라 이를 무기로 삼아 상대방을 공격하기도 한다. 남성 및 노장 중심의 기
    존 문화가 여성 및 소장 중심의 새 패러다임으로 거듭나려고 한다. 특히 탄
    핵 찬-반 간에 폭력적으로 치닫지 않을지 걱정이다.

    지금은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라하여 청년실업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지만 30여년 전인 70년대에는 사실 직장잡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
    다. 자유가 `아버지`라면 빵은 `어머니`라 하겠는데, 이렇듯 정치에서 양
    친이 구존(俱存)한 문화를 찾기란 정말 쉽지 않다. 대개는 어느 한 쪽만
    을 강요하기 일쑤인데 이런 대표적인 예가 70년대 박정희 대통령과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전자를 가리켜 군사독재라 하고 후자를 민중독재라고도 한다. 민중독재
    란 요새말로 포퓰리즘 같은 것인데, 이를테면 국민인기주의, 또는 국민선
    동주의라 하겠다. 이에 대해 최근 노 대통령을 탄핵한 국회는 의회독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용례들은 거의 보편화한 경향이므로 크게 무리가
    없을 줄로 안다.

    하늘을 나는 새는 두 날개가 서로 평형을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좌
    익과 우익의 비교로 곧잘 쓰이는데, 실제 익(翼) 자는 새의 날개를 뜻하
    고 있다. 정치가 바로 이래야 하나 현실은 늘 갈등을 빚어왔다. 이때의 갈
    등을 어떻게 조정하고 최소화하느냐가 중요한데, 박-노 두 사람은 공히 눈
    물, 즉 국민의 동정심을 사고자 했던 것 같다.

    한나라당에 새 여성 대표가 선출돼 관심을 끈다. 박근혜 대표가 곧 고
    박 대통령이 애용하던 눈물의 정치를 펴지 않을까 싶다. 주지하듯 육영수
    여사가 비명에 간 후, 박 대표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퍼스트레이디 역을 했
    다. 단아하고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가 이들의 트레이드마크였음은 잘 알려
    진 얘기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딸의 가련 단아한 이미지를 내세워 자신의
    철권정치를 희석시켰으니, 말하자면 독재와 눈물이란 정반대의 패러다임
    이 정치에 흘러들어간 것이다.

    노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중앙선관위의 선거법위반 발표
    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내일 서울 광화문에서는 탄핵을 지지
    하는 단체들도 촛불집회를 갖겠다고 한다. `촛불`이 탄핵반대 단체들만의
    것이 아니라고 함을 선언한 셈인데 서로간의 충돌이 없었으면 한다.

    `민주수호`는 탄핵 무효를 외치는 사람들의 한 인식체계이기도 하다. 그
    런데 탄핵 지지단체들이 탄핵 반대 측의 전용물인 촛불을 가져와 공유한다
    고 하는 마당에 `민주수호`까지도 자신들의 구호로 가져다 쓸지에 궁금증
    이 인다. 당초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될 때 야당의원들은 `의회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했었다. 이것으로 본다면 `민주수호`가 탄핵반대 측만의 패러다
    임일 수는 없기도 하다.

    `민주수호`가 역사운동의 용어로 쓰인 적은 60년 4.19혁명 이래 69년 삼
    선개헌과 이후의 `교련반대` 등 일련의 학생운동, 그리고 87년 6월항쟁 때
    였다. 이번 탄핵반대 행렬에 30∼40대 직장인이 많이 참가했다고 하는데 아
    마도 6월 거리의 항쟁을 못 잊어서가 아닐까 싶다.

    이 시대의 주도세력이 누가 돼야 하는 것과 관련하여 노장과 소장 간에
    목하 첨예한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이 대립의 중심에 여성이 있음도 이채
    롭다. 한나라당 박 대표가 그렇고, 민주당에서 각을 세워 사실상의 당권
    장악을 시도하고 있는 추미애 의원도 그렇다. 조순형 대표가 버티긴 하나
    곧 여성의 민주당 `접수`도 가시화되지 않을까 한다. 일찍이 자유와 빵에
    서 시작된 독재와 민주의 패러다임이 가지를 치면서 더욱 복잡하게 탄핵정
    국을 달구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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