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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실안(實安)` 가는 길

  • 기사입력 : 2004-03-05 00:00:00
  •   
  • 이종근 논설위원 겸 기획사업부국장


    두어해전 모 방송국의 드라마에서 `삼천포`라는 특정 지명을 모욕적인 대
    사로 인용했다가 혼쭐이 난 적이 있다. 처음엔 아침 드라마를 통해 “요놈
    의 입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질 뻔 했네”라고 했다. 두달후엔 저녁 드라
    마에서 “학교 때 발표를 시키면 삼천포로 빠져 가지고...”라는 대사를 다
    시 내보냈던 것.

    이렇게되자 옛 삼천포지역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 방송국측은 급
    기야 사천시장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드라마 작가는 별 생
    각 없이 해당 지명을 인용했지만 부정적이고 소외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지
    자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중매체는 아니라도 은연중 대화
    를 나누는 사이 예의 통념상 `삼천포`가 등장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그 유래나 출처에 대해선 확실치는 않지만 너댓가지 가설도 있다. 아마
    부근을 지나다 삼천포로 들어서면 외지와의 연결도로가 없어 다시 돌아나와
    야 하는 불편에서 유래되지 않았나 하는 설이 제법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옛 삼천포는 전국의 시지역 가운데 가장 교통오지나 다름없는
    신세였던 셈이다.

    그러한 삼천포가 근래들어 몰라보게 변하고 있다. 지난 95년, 사천군과
    시군통합을 하면서 사천시로 이름이 바뀌고 시면적이 6배로 늘어나서가 결
    코 아니다. 적어도 옛 지명이 풍겼던, 낙후된 교통사정 만큼은 다른 어느
    도시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사통오달(四通五達)한 새로운 국면으로 달라
    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해고속도로와 진주에서 진입하는 도로가 고속화도로
    로 한창 공사중이고, 서포에서 용현을 거쳐 삼천포 실안을 잇는 사천대교
    가 내후년 완공 목표로 23개 다릿발의 절반 이상을 꽂았다. 그런가하면 고
    성지역을 최단거리로 연결하는 국도가 이미 4차선으로 확장, 시원스레 뚫렸
    다.

    남해를 잇는 국내 최장의 창선_삼천포대교가 1년전에 개통돼 수십여대의
    관광버스가 연일 북적대고 있다. 멀지않아 다리를 통한 남해-여수간 연육교
    도 놓여질 전망이다. 삼천포로 빠져 낭패를 보던 시대는 옛날 이야기가 돼
    버렸다. 이제는 아예 삼천포로 빠지지 않으면 한려수도를 찾는데 시간 낭비
    일뿐 아니라 관광다운 관광도 못할 처지로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다. 부산 강서구에 자리한 김해공항을 빼고는 도내서 단 하나뿐인 공항도
    이 곳에 있고, 남해안의 수많은 섬들을 연결하는 유람선 집중센터가 삼천
    포 부두에 있어 하늘과 땅, 바닷길이 이렇게 한데 맞닿은 곳도 없다.

    필자는 틈 나면 삼천포를 자주 찾는다. 그 중에서도 삼천포와 남해 관광
    의 길목에 있는 실안(實安) 앞바다 전경은 편안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빼놓을 수 없다. 늑도와 초양도, 모개도 등 3개섬을 다섯개 다리로 걸쳐 놓
    은 명물을 감상하기가 최적지일 뿐 아니라 잔잔한 바다와 어우러진 죽방,
    그 뒤에 병풍처럼 둘러친 섬, 유유히 떠다니는 배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급한 물살을 견디는 어류의 탄력적인 육질에서 오는
    생선회의 기찬 맛은 국내 어느 곳보다 뛰어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삼천포가 갖고 있는 관광테마는 사실 무궁무진하지만 아는 이는 드물다.
    실안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각산의 망루와 봉화대를 비롯, 와룡산의 오
    월 철쭉, 늑도 패총, 남일대 코끼리바위, 대방진 굴항 등은 훌륭한 볼거리
    이다. 거북선 출정의 시작이 된 선진리성과 신라 고찰 다솔사, 세계 최대 `
    약사와불 몸속 법당`이 있는 백천사, 사천읍성, 세종·단종 태실지 등도 모
    두 사천시에 있다. 다리박물관 구경 삼아 창선_삼천포 대교에 왔다가 회
    한 접시 하고 가는 서울이나 대전 등 외지 관광객들로선 알 턱이 없다.

    그러니 삼천포의 진짜 관광이 따로 있음도 모르는 건 당연한 일. 석양 무
    렵 섬과 바다를 벌겋게 수놓는 `실안 낙조`가 그것이요, 호수 같은 밤바다
    위로 요요히 떠오르는 달의 정취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는 `실안 월
    야`가 그것이다. 초강대국 미국이, 아니 미래의 초강대국 중국인들 수백조
    달러를 들여도 감히 꾸미지 못할 실안의 정취요, 자연의 보고가 아닐 수 없
    다. 이제 실안의 관광지 개발사업이 마악 시작됐다. 가장 동양적이며, 가
    장 세계적인 관광지로 내딛는 첫 걸음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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