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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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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금요 칼럼] 꼬리잡힌 `전두환 비자금`

  • 기사입력 : 2004-02-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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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로에 파묻은 열쇠처럼 꼭꼭 숨겨진 `전두환 비자금`의 실체가 바야흐
    로 그 모습을 드러낼 것 같다. 전재용씨가 관리하던 괴자금 167억원 가운
    데 73억원이 전두환씨의 것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나머지 돈도 전부 전씨
    의 것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재용씨는 자신의 외조부(이규동씨)로부터 받
    은 돈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검찰의 조사결과 거짓임이 확인됐다. 수일전
    그는 구속돼 지금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다. 전씨의 비자금 실체 규명이 어
    려웠던 까닭은, 이 돈을 일찌감치 무기명 장기채권 등으로 전환해 은밀하
    게 보관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근년들어 이 비자금 가운데 일부를
    노숙자 등의 명의로 차명계좌를 개설해 유통시키다가 최근에 그 꼬리를 잡
    힌 것이다.

    수일전 재용씨가 검찰에 출두하면서 빛바랜 코트 차림에 모자를 푹 눌러
    쓰고 고물 승용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동정심을 유발하려고 얄
    팍한 쇼를 연출하고 있다며 눈살을 찌푸렸을 것이다. 그리고 일관되게 외조
    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거짓말하는 행태를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부자(父
    子)가 닮았을까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피는 못 속인다는 느낌과
    함께 부전자전(父傳子傳)의 거짓 진술을 펴는 그들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라고 본다.

    생각해 보라. `국제통화기금 경제관리`란 국난이 닥쳤을 때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받았던가. 그리고 지금 거리에 넘쳐나는 청년실업자들의
    행렬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여진(餘震)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전
    직 대통령을 지낸 그는 이러한 고통스런 사회 현상을 보고도 과연 무엇을
    했는가. 국민들의 어려운 삶은 내 알 바 아니란 듯이 처자권속들의 호의호
    식(好衣好食)과 추종무리들과의 유흥을 즐기지 않았던가. 주변에 많은 사람
    들을 거느리고 옛 왕후(王侯)들이 부러워 할 만큼 호사(豪奢)를 누림으로
    써 구설수에 오르내렸음에도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과 질책을 외면했던 그였
    다.

    지난 1997년 4월, 반란·뇌물죄목으로 대법원이 그에게 무기징역과 함께
    2천2백여억원의 추징금을 선고했지만 자진 납부한 것은 없었다. 검찰이 겨
    우 3백30여억원을 받아냈을 뿐이다. 교묘히 은닉한 그의 엄청난 비자금을
    검찰이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디한번 찾아내 추징해 보라며 호
    언(豪言)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법원이 전씨의 전 재산을 명시해 줄 것
    을 판결하자 자신의 소유재산은 29만1천원뿐이라고 함으로써 국민의 분노
    를 또한번 샀다. 삼척동자라도 그의 말이 새빨간 거짓이라고 믿는 데도 말
    이다. 정말이지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기만이었음이 이번 검찰조사에서 그
    대로 드러난 것이다.

    더욱 분통터지는 것은 이러한 자를 전직 대통령을 지냈다하여 국민의 혈
    세로 언제까지 생활비·활동비·품위유지비를 꼬박꼬박 대주어야 하는가 하
    는 점이다.

    대검중수부가 그를 내주에 소환해 조사키로 한 만큼 이번에야말로 미꾸라
    지처럼 법망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가 퇴임하면서 가져
    나갔다는 1천4백억원의 비자금이 새끼를 쳐서 이젠 2천억원대에 달할 것이
    라고 한다. 검찰은, 3년전 전씨의 재산에 대한 법원경매처분당시 그의 소
    유 벤츠 승용차를 대신 낙찰받아 그에게 되돌려준 바 있는 S씨가 재용씨 명
    의의 벤처기업을 인수한 사실에 주목하고 자금출저 및 그 경위를 캐고 있다
    고 한다. 특히 S씨는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최측근이라고 하니 비자금을 관
    리하는 자 가운데 한 사람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국민주택채권 160
    억원을 사들인 바 있는 그의 사돈 이(李)모 회장의 매입자금원이 전씨의 비
    자금일 것이란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이번에 그 사실여부를 분명히 가려
    내야 할 것이라고 본다.

    국민을 우롱하고 검찰과 법원을 속된 말로 갖고 논 전두환씨를 그냥두고
    서는 어떻게 사회정의와 법의 형평성을 논할 수가 있겠는가. 공로가 있으
    면 상을 주고 죄가 있으면 반드시 벌을 내리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
    이 바로서지 않고서는 국가와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다. 무너진 가
    치관을 바로 세워 해이해진 도덕률을 추스르지 않는다면 이 나라의 앞날또
    한 어두울 수밖에 없다. 전씨의 불법 비자금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
    는 일이야말로 법이 살아있음을 세상에 천명하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라
    고 확신한다. 전씨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그리
    고 그가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믿고 있다.
    목진숙(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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