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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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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금요 칼럼] 땅과 사람의 은혜 얘기

  • 기사입력 : 2004-01-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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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 1주일 후면 전국의 관심을 불러 모을 일이 발생한다. 강삼재 의원이
    내달 6일 법정에서 ‘그 돈’이 “안기부 계좌에서 나온 게 아니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직접 건넨 것”이라고 진술할 지의 여부인 것이다. 사람들은
    강 의원이 역사 앞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 하고 또 더러는 끝까지 의리를 지
    켜 김 전 대통령을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강 의원이 어느 쪽을 택하든 그가 자란 마산은 그와 함께 입방아에 오르
    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를테면 ‘마산 사람 다 그렇다니까’하는 말들이
    충분히 예상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람은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 준 땅
    으로부터 은혜를 받지만 이것 때문에 자유롭지도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엊그제 전남 무안·신안의 한화갑 국회의원은 수도권으로 지역구로 옮기
    는 작별인사에서 “저를 길러 준”운운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 의원만 해
    도 지난번 정계은퇴 선언에서 ‘마산의 은혜’를 떠올리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사람은 땅의 은혜 말고도 부모와 스승, 친지·선배·동료 등의 사람으로
    부터 은혜를 입는다. 실은 이 은혜가 클수록 흔히 일러 ‘복이 많다’고 한
    다. 그런데 사람들은 곧잘 땅의 은혜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사람의 은혜를
    저버리는 수가 있다. 그 반대로 사람의 은혜는 강조하면서도 땅의 은혜를
    소홀히 할 수도 있다. 우선 후자와 관련하여 다음의 고성 얘기를 하자.

    허윤도씨란 고성 출신의 재일동포 기업인이 있었다. 20년전쯤 작고할 당
    시 남긴 재산이 우리 돈으로 치면 조(兆) 단위에 이르렀다. 그가 고향을
    못 잊어 고성에 이씨, 최씨만 국회의원을 할 게 아니라 허씨 집안에서도 국
    회의원을 내야 한다고 믿었다. 고성은 원래 최·허·이 3대 성바지가 유명
    했고 허씨만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 이를 위해 그는 조선일보 기자이
    던 허문도 전통일원장관을 일본으로 불러내 유학시키는 등 온갖 뒷바라지
    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5공 때 승승장구하던 허 전장관은 그에게 “제
    가 고성 국회의원밖에 안 보이십니까”고 말해 그를 실망시켰다고 한다.

    허 전장관과 비슷한 경우를 최낙정 전해양수산부장관에게서도 보게 된
    다. 잘 알다시피 최 전장관은 차관이 된지 1년도 안돼 장관이 되는 벼락출
    세를 거듭했다. 너무 우쭐해진 탓에 그는 그만 “장관이 됐으니 고성을 위
    해 뭔가 보람된 일도 해야지”하는 생각을 잊고 말았다. 자신의 영광을 고
    향이란 땅의 영광으로 돌릴 줄 알았더라면 그는 좀더 신중히 하여 장관직
    을 길게 끌지 않았을까 한다. 다만 최 전장관은 지금 자신의 행동을 깊이
    뉘우치고 있고, 이 점에서 그는 허 전장관과는 많이 다르다.

    인간사회의 미덕이란 은혜를 받고 갚아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최근
    경남지사 사퇴 및 한나라당 탈당으로 ‘배신’이란 말까지 들었던 김혁규
    열린우리당 중앙상임위원의 경우, 과연 그는 그런 말을 들어야 할까. 그것
    은 좀 지나쳤다고 본다. 그 역시 퇴임식에서 ‘경남의 은혜’를 떠올리며
    연신 눈물을 닦아냈었다. 그러면서 “더 많이 더 크게 경남을 사랑하고자
    중앙으로 무대를 옮긴다”고 양해를 구했다. 또 사퇴를 선언하기 전에 자신
    의 정치적 은인인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찾아가 거취변동을 고하기도 했다.

    진실이란 무엇일까. 가령 ‘이웃집 양을 훔친 아버지를 자식이 고발해야
    할까.’ 이에 대해 공자는 “자식은 아버지의 허물을 숨기고 아버지는 자식
    의 허물을 숨기는 그 가운데 정직이 있다(子爲父隱, 父爲子隱, 直在其中
    矣)”고 논어에서 설파했다. 이러면 무슨 케케묵은 봉건사상이냐고 할지 모
    른다. 그렇다면 지난 설날, 구치소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 두 형제는 하릴없
    이 백리 길을 걸었을까. 안양에서 서울까지 그 혹독히 추운 날, 설빔을 위
    해 구속된 아버지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린 형제는 걷고 또 걸었
    다.

    ‘안기부 돈’이든 ‘YS 대선잔금’이든 간에 분명한 것은 YS가 그 돈의
    직접 수혜자가 아니란 점이다. 그때 돈이 어디서 났건, 우선 쓰고 보자며
    신났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진다. 강 의원은 거창하게 ‘역사 앞에 진
    실’을 들먹일 게 아니라 알기 쉬운 길을 찾았으면 한다. 공자의 ‘직재기
    중의’도 그 하나이겠다. 허도학(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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