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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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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금요 칼럼] `국가`와 `민족`

  • 기사입력 : 2003-08-22 00:00:00
  •   

  • 일부 보수단체가 8.15 행사에서 인공기를 소각한데 대해 북한이 강력 항
    의하고, 대구유니버시아드 불참까지 시사한 바 있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
    이 ‘유감’을 표명, 북한의 U대회 참가가 가까스로 결정됐다. 이런 경과
    와 관련하여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북한은 법적으로 엄연히 ‘주적’이라
    며, 따라서 같은 민족이라 해서 마냥 끌려 다닐 수는 없다고 강조해 눈길
    을 끌고 있다. 우리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맞부딪히는 현장이다.

    조선일보의 21일자 사설 “대통령은 ‘국가’와 ‘민족’ 혼선(混線) 정
    리해야”를 보자. 우선 그 도전성에 놀라게 되는데, 즉 “ ‘인공기 소각
    유감 표명’을 놓고 우리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첨예한 갈등과 대립”이
    라고 묘사한다. 정말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를 심각히 고민했
    는지는 저마다 돌아보면 알 것이다.

    사설이 말해주듯, ‘국가’로서의 북한은 우리에게 미국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이질집단일지 모른다. 다시 말해 미국과는 동맹관계요, 북한과
    는 적대관계인 것이 오늘의 우리 현실이다. 하지만 그런 역학관계 내지 숙
    명관계를 덮어두지 않고 까발리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설은 바로
    그런 어정쩡한 정서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고발하고자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은, 설령 그것이 각각 지상적인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로 치닫더라도 결코 그것을 이분법적으로 논단해선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일찍이 서구의 학풍을 받아서인지, 어떤 사물이나 대상에 대해 그 특성이
    무엇인지 분석하기를 즐겨한다. 그 같은 과학적 연구태도를 어찌 나무랄까
    마는 아쉽기로는 분석에서 분석으로 끝나는 것이다. 서로 다른 특성들 사이
    에서 제3의 특성을 찾아내려는 종합적 사고력이 부족한 것이다.

    분명 국가주의가 갖는 특성이 있다. 그런가 하면 민족주의가 갖는 특성
    또한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특성이 서로 충돌할 때, 어떤 대안을 제시
    할 수 있느냐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철학적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우
    린 사실, 그러한 특성화 작업에 인색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란 2분법
    적 사고에 젖어왔다. 정치가 더욱 그러하다. 멀리로는 ‘김구냐, 이승만이
    냐’에서 가까이로는 ‘노무현이냐 이회창이냐’는 논란에 휘말려왔다.

    노 대통령이 언젠가 “절대 하야(下野) 안 한다”고 했고, 그제는 “국가
    운영에 어려운 상황이 오면 대통령의 권한과 권력을 법대로 행사하겠다.”
    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제
    3의 특성화가 없는 탓에서다. 만약 정몽준씨가 끝까지 버텨주었다면 지금과
    는 다른 상황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노무현 특성화’에 이회창씨
    를 대신한 ‘한나라당 특성화’가 맞부딪히면서 마찰음이 심하다. 이를 빗
    대 조선일보는 22일자 사설에서 “나라 팽개친 대통령과 야당의 반목”이라
    고 한다.

    그런데 이 사설도 제목부터가 문제다. ‘나라 팽개친’의 장본인이 ‘대
    통령’인지, 아니면 ‘대통령과 야당’인지가 확실치 않다. 그러나 문법적
    으로는 ‘나라 팽개친’이 대통령에 걸린 관형어격으로 봐야한다. 그렇다
    면 이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세상에 나라를 내팽개치고도 성한 대통령
    이 있겠는가. 단순한 실수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조선일보의 교열은 신뢰
    도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터다. 아마도 ‘나라 팽개친 대통령’이란
    어감을 주려한 ‘미필적 고의’가 아닐지 모르겠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양분이 아닌 양립관계로서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 특히 단일민족국가인 우리의 특성상 더욱 그렇다. 6.25는 1948년 남
    한단독정부 수립에서 이미 그 불행을 예고했고, 백범선생은 이를 수없이 경
    고했다. 훌륭한 지도자는 ‘민족’을 버리지 않아도 될 상황을 창출하는 것
    이지, ‘민족’을 버릴 수밖에 없는 위기에 내몰리지 않는다. 제1, 제2 특
    성화에 매몰되지 않고 제3의 특성화를 찾을 때 2분법적 사고는 자연히 그
    입지를 잃고 만다. 국가와 민족은 하나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허도학(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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