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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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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天上 詩人` 천상병

  • 기사입력 : 2003-05-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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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상(天上) 시인` 천상병(千祥炳)이 하늘나라로 떠난지 만 10년을 맞이
    했다. 사람들은 왜 그를 `천상 시인`이라고 부를까. 그 직접적인 것은 『천
    상병은 천상시인이다』란 그의 시집 제목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아마도
    생전, 그가 남긴 `귀천(歸天)`이란 시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 하늘로 돌
    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
    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귀천` 전문 ) 이 시에는 아무런 기
    교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물 흐르듯 바람 불어가듯 생성소멸(生成消滅)
    의 우주법칙에 순응하는 한 인간의 담담한 삶의 향기가 묻어날 뿐이다. 이
    시를 읽으면, 시인 천상병은 생(生)과 사(死)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대자유
    를 누린 `천상 시인`임을 절감하게 된다.

    하기 좋은 말로 `물처럼 바람처럼 사는 삶`이라고 하지만, 어디 그게 쉬
    운가. `무소유(無所有)`가 체질화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반인
    들로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러한 삶을 살다가
    떠났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끊기 힘든 욕망이 무엇일까. 이것은 바로
    `소유욕(所有慾)`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천 시인은 한 잔의 술로써도 진정
    행복해했다. 추호도 남을 속이거나 원망하지 않았으며, 궁핍한 현실을 그대
    로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그러한 삶을 한 단계 뛰어넘어 초연한 시적 세계
    로 승화시켜 나갔던 것이다.

    이 세상에는 별처럼 많은 시인들이 존재하지만 지극히 맑은 영혼을 소유
    한 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천상병은 참으로 영혼이 맑
    은 시인이었다. 어쩌면 그는 술로써 영혼을 깨끗이 씻으려 했는지도 모른
    다. 그렇다면 그에게서 술이란 맑은 심성의 순도(純度)를 유지하는 `카타르
    시스 제(劑)`였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병마(病魔)와 싸우면서도 세상
    을 보는 따듯한 마음과 순수성을 잃지 않았던 그였다. 이러한 그를 두고 사
    람들은 소년과 같은 천진무구함을 지닌 시인이라 불렀다.

    “집을 나서니/ 여섯살짜리 꼬마가 놀고 있다./ `요놈 요놈 요놈아!`라
    고 했더니/ 대답이/ `아무것도 안사주면서 뭘` 한다./ 그래서 내가/ `자 가
    자/ 사탕 사 줄게`라고 해서/ 가게로 가서/ 사탕을 한 봉지/ 사 줬더니 좋
    아한다./ 내 미래의 주인을/ 나는 이렇게 좋아한다.”(`요놈 요놈 요놈
    아!` 전문) 이 시를 통해서도 천 시인의 마음이 바로 동심에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정신세계와 시 세계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여기에
    무슨 문학 비평이 끼어들 자리가 있겠는가.

    왜 세상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도 그리워 할까. 삶이 각박하고 초조할수
    록 그의 느긋한 여유와 순수한 정신세계가 고달픈 현대인들이 쉬어갈 수 있
    는 그늘이 되기 때문은 아닐까. 그것은 또한 자신의 처지가 힘든 상황일수
    록 삶을 관조하면서 살다간 천 시인의 삶과 시 세계로부터 크나큰 위안을
    얻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누구나 천 시인과 같은 삶을 꿈꿀 수
    는 있지만 그렇게 살아가기란 어렵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의 세계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바로 지순한 도(道)의 경지에 다다르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
    이다.

    마산시 진동면이 고향인 천 시인은 마산중(현 마산고) 5학년에 재학하던
    1949년에 쓴 시 `강물`이 당시 담임이자 국어교사였던 김춘수 시인의 주선
    에 의해 청마 유치환의 추천을 받아 『문예』지에 실림으로써 등단했다. 서
    울대 상학과를 나온 이후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고, 계속하
    여 생활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1993년, 향년 64세를 일기로 타개하기까지
    그 고운 심성만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내일 모래 양일간, 「제1회 천상병문학제」가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서
    한국시사랑문인협회의 주최로 열린다. 이곳에는 그의 시 `귀천`을 새긴 시
    비(詩碑)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한결 더 의미가 깊다. 경기도 의정부 예
    술의전당에서도 그를 추모하는 예술제(4월21일~5월31일)가 열리고 있다. 그
    런데 정작 그의 고향 마산에서는 아무런 미동도 없다. 어찌된 일일까. 이
    곳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잊고 있기 때문일까. 고향땅에 `천상(天上) 시인
    (詩人)의 노래`가 메아리되어 울려퍼져 만 사람들의 가슴을 흠뻑 적셔줄 그
    날은 언제쯤 올까. /목진숙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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