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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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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새 천년인상

  • 기사입력 : 2000-01-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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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천년」에 대해 한 번쯤 자신의 삶과 결부시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
    을 것이다. 새(新)는 변화를 말하고 천년은 영원을 뜻한다. 불과 1백년 미
    만의 삶을 영위하는 인간에게 「천년」은 영원을 뜻하는 추상명사인 것이
    다. 새롭다는 것은 변화를 뜻하고 머물지 않고 흐르는 것을 의미한다. 천년
    은 시간의 축적, 역사를 말한다. 새(新)는 현재진행형의 물살과 같은 것이
    라면, 천년은 흐름의 공간성을 뜻한다.

    「새」와 「천년」이 만난 것은 「일시성」과 「영원성」, 찰라와 영겁의
    만남을 의미한다. 「새」라는 변화는 바람과 같은 것이어서 끊임없이 흐른
    다. 기존의 질서나 형태, 구조물, 문명도 그냥 두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장치나 구조물, 제도라 할지라도 시간의 침식에 견뎌낼 수 있는 것
    은 존재하지 않는다.「새로움」은 기존의 모든 형태를 거부한다. 이를 변화
    라 부르고 창조라고 말한다.

    현대는 새로움의 시대다. 변화의 시대인 것이다. 새 제도, 물질, 상품을
    끊임없이 내놓지 않으면 안된다. 어느덧 인간은 급변의 속성에 길들여져
    「변화」를 두려워하면서도 즐기게 되었다. 변화하지 않으면 경쟁에 뒤지
    게 된다는 생존논리에 쫓기면서도 인간이 미처 대응력을 갖추기도 전에, 변
    화는 더 빨리 달아나고 있다. 현대엔 연원한 가치를 지닌 그 어떤 것도 용
    납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것들의 효용성도 변화의 속도
    에 따라 점차 짧아지지 않을 수 없다. 제대로 사용할 새도 없이 용도 폐기
    되거나, 심지어는 쓰레기로 변해버리고 만다.

    무한 경쟁, 무한 변화 속에서 영원찾기는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그러
    나, 인간은 제한된 삶을 살면서도 영원을 열망하는 존재인 까닭에 새로운
    것과 영원한 것을 동시에 추구한다. 변화는 영원성을 거부하며, 붕괴 퇴색
    시켜 사멸시키려 한다. 변화의 물살에 견딜 수 있는 영원 장치는 없다. 가
    치, 도덕, 윤리, 제도, 진리도 시간의 물살 앞엔 변화를 보인다.

    새(新)와 천년(영원), 이 상반성의 만남- . 사람들은 밀레니엄 축제를 통
    해 영원맞이 의식을 경험했다. 인간의 수명은 제한적이지만 영원을 꿈꾸고
    수용하는 것에서 가치와 의미를 찾는다. 인간의 열망은 제한된 삶을 통해
    서 영원성을 수용하려는데 있다. 영원성은 불변성을 말한다.
    인간의 역사와 문화는 항상 변화와 불변성의 싸움 속에서 이뤄져 왔다. 보
    수와 진보, 확장과 방위, 전통과 창조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영원성
    은 안정과 질서를 가져다 준다.

    새로운 것과 영원한 것, 이 상반성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 새
    천년을 열면서 맞는 화두가 이것이다. 이 두 가지가 상반성이 아닌, 친화성
    으로 조율할 수는 없는 것일까. 어떤 변화에도 초월할 수 있는 가치, 영원
    불변의 가치란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인가.
    새로운 것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이것은 지금까지 쌓
    아온 경험의 축적에서 나온다. 창조가 모방에서부터 나오듯이, 변화는 경험
    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천년」이란 시간의 축적은 엄청난 인류의 경
    험,- 이른바 역사, 문명을 쌓아온 삶의 총체적인 것이다. 새 천년의 비전,
    그 변화는 「천년」간 인류가 쌓은 지혜의 힘에서 오는 것이다. 새롭다는
    것은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끊임없이 허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가
    치로운 것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교육이 허물어지고, 교실이 붕
    괴되는 현상을 두고 이것은 잘못이라고 개탄할 일만은 아니다. 영상정보화
    시대를 맞아, 교실에서 행하는 학교교육만으로는 교육기능을 충족시킬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교육의 다변화, 전문화가 진행된 마당에, 아직도
    구시대적 교육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는 학교는 학생들을 통제할 방법을 상
    실한 것이다.「溫故知新」이란 말에서 변화성과 영원성의 친화관계를 엿본
    다.

    시대를 이끄는 힘이 변화일 것이고, 가치와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돼가고 있다. 눈부신 변화, 상상
    을 초월하는 변화를 즐기는 시대를 맞고 있다.
    지난 1천년대는 활자매체의 시대였다. 이제 본격적인 영상정보매체 시대
    로 진입하고 있다. 인터넷시대인 것이다. 인터넷은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
    어나게 한다. 시·공간을 초월해 인터넷 안에서 대학을 만들고 거래도 가능
    하게 한다. 새로운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는 거
    북이 걸음이다. 변화를 수용하고 새 시대에 걸맞은 도덕률과 윤리의식을 가
    진 새 천년인상(像)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이제 변화성과 영원성의 적절
    한 융합과 관계 정립을 통해, 새 천년대 공동체를 위한 새 인간상을 만들어
    야 할 일이 급선무일 것이다. 정목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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